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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30. 2016

황금 사원에서 만난 친구들 : 인도 암리차르

마치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 여행은
여행 중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다.

- 헨리 보이

  황금 사원(Golden Temple)으로 향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근처의 도시 암리차르(Amritsar). 그곳엔 두 가지 큰 볼거리가 있다. 그 하나는 시크교도들의 성지인 '황금 사원'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에서 서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인도-파키스탄의 국경 와가(Wahga)에서 벌어지는 '국기 하강식'을 관람하는 것이다.



   장소 : 인도 암리차르


 인도에 머문 지도 두 달에 가까워갔다. 이제 인도를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나는 인도 남부보다는 델리 주변의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몇 군데를 여행할 계획이었다. 그중 한 곳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암리차르'였다. 힌두교도들의 성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처럼 많은 여행자들은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을 찾아갔다. 인도의 대표적인 명소로는 타지마할(Taj Mahal)이 있다지만, 영국의 BBC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장소'를 이야기하면서 '황금 사원'을 타지마할 보다 우선순위에 올려놓는다.(타지마할은 10위, 황금 사원은 6위. 2014년)


※ 황금 사원의 입구. 앞 쪽에는 멀리서 온 시크교도를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방도 마련돼 있다.


  황금 사원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원의 입구 앞쪽에 마련된 거대한 건물. 복도식 아파트와 같은 숙소의 1층에는 샤워 시설과 세면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고, 멀리서 황금 사원을 찾은 시크교도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황금 사원을 수시로 들렀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숙소의 한쪽에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침대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홀을 개조한 듯한,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 형태를 본뜬 여행자 숙소는 어두침침했다. 주황색 빛을 힘겹게 내뿜고 있는 조명이 달린 길쭉한 방은 오랜 여정에 지친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기엔 더 없이 좋은 공간으로 여겨질 만도 했다. 출입문에서부터 벽 끝까지 침대가 나란히 쭉 놓여 있고 침대의 앞쪽으로 여행자들이 움직여야 했기에 길쭉한 방의 가장 안쪽은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 방 안에는 나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부터 둘 혹은 서너 명이 함께 여행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있었기에 항상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내 침대의 옆에 누워있던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이름은 '짐(Zim)'. 미국 보스턴에서 왔다. 이제 막 점심 식사를 하고 쉬는 중이었고 잠시 후에 암리차르의 '사원 - Mandir mata Lal Devi'라는 곳에 놀러 갈 생각이라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나는 동행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두 명 더 있다. 안쪽 침대에 있던, 말괄량이 소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영국 소녀 들이었다.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소녀, 약간은 수줍은 듯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의 이름은 하나(Hannah)였고, 햇살에 그을린듯한 피부 아래 주근깨가 숨어있는, 순박한 미소을 지닌 활발한 소녀의 이름은 캐시니(Kayshani)였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하나와 캐시니는 런던의 한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하고 졸업 기념으로 인도를 여행 중이라 했다. 황금 사원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들과 함께 암리차르 시내의 'Mandir Mata Lal Devi'라는 사원을 찾아 떠났다.

※ 왼쪽의 서 있는 남자가 '짐(Zim)', 중간에 캐시니, 그리고 맨 오른쪽이 하나.


  인도에는 수많은 신(神)들이 있다. '인도에서는 돌멩이도 주워서 모시면 신이 된다'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많은 신이 있는 나라이다. 인도가 여러 종교의 발상지인라는 것만 생각해봐도 여러 '신'을 모시는 것에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andir Mate Lal Devi'는 여러 신들을 모아놓은 사원이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신들부터 화려한 치장을 한 신까지 다양한 신들이 있었고, 그곳은 여러 신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마치 놀이동산의 요술의 집을 탐험하듯 우리는 즐겁게 신들을 구경했다. 캐시니와 하나는 활동적이었다. 사원을 찾아가는 갈 때부터 싱긍생글 웃으며 생기를 내뿜던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


※ 신들을 모아놓은 사원 안에는 여러 신들이 있었다. 우스꽝스런 모습을 한 신에서부터 '동굴'같은 것 그 자체도 신인 것 까지. 우리는 요술의 궁전을 탐험하듯 사원 안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는 사원 구경을 마친 뒤,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와가'로 가는 릭샤에 올랐다.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인파가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모여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의 군인들이 진행하는 국기 하강식은 두 나라의 자존심 대결이라 불릴 만큼 긴장감과 위엄 넘치는 쇼였다. 우리나라에서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의장대가 앞에 나서 의장 행사를 보여주듯, 이들은 상대국의 군인과 관중들을 앞에 두고 품위와 절도가 갖추어진 포즈를 취하며 자신들의 위엄을 세웠다. 숨죽여 군인들의 행동을 바라보던 군중들은 가끔씩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고, 파키스탄과 인도의 군인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관중의 환호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경쟁했다. 군인들의 퍼포먼스가 절정을 향해 나아갈수록 하늘은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태양이 완전히 파키스탄의 것이 되었을 때, 국경 하늘에서 펄럭이던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기는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고 국기 하강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 국기 하강실이 진행되는 인도-파키스탄의 국경 와가. 왼쪽이 파키스탄 쪽이고 오른쪽이 인도쪽이다. 인도쪽 관중석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있다.

※ 국기 하강식이 끝나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문이 굳게 잠긴다.


  황금 사원의 밤은 고요했다. 경건함이 깃든 고요다. 완전한 어둠을 품고 있는 사원의 물결. 그 위에 일렁이는 황금빛 형상. 사람들은 거대한 연못가 근처에 둘러앉아 사원을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밤인가. 사원 저 바깥에는 온갖 소음과 혼잡함이 있지만 불과 몇 걸음만 걸어 이곳으로 오면 고요함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눈 앞에 찬란히 빛나는, 인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 있다. 사원의 밤은 내게 평온함을 전해 주었다.

  낮의 황금 사원은 신비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황금빛 사원에 들어서기 위한 시크교도들의 행렬. 햇살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사원. 물결에 비친 그림자는 황금 사원의 신비스러움을 부각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마음에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여행자가 휴식을 즐기는 방법인 동시에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황금 사원의 모습. 시크교도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나는 생각했던 일정보다 오래 황금 사원에 머물렀다. 특별히 해야 하거나 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곳이 편했고 '헤이, 친구!(Hey, Freiend)'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과 함께 항상 무언가를 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함께 시크교 사원(황금 사원)에서 무료로 주는 식사를 하러 가거나 누군가가 사원 근처 마을의 맛있는 식당이나 빵집이 있다고 알려주면 함께 맛을 보러 가는 정도였다. 터키에서 왔다는 아덴은 내가 이스탄불에 갈 것이라고 하니, 이스탄불의 저렴한 숙소와 맛있는 먹거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기도 했고, 폴란드에서 온 친구는 크라쿠프(Krakow)에 가면 맥주 지비에츠(Zywiec)를 먹어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눴던 것이다.

  '짐'이 먼저 떠났다. 하나와 캐시니도 떠났고 마지막으로 내가 암리차르를 떠났다. 모두가 우연히 만났지만, 그 만남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지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하나가 내게 전해준 메시지. 내가 들고 다니던 지도의 뒤편에 하나와 캐시니는 긴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하나는 나에게 작은 종이 쪽지를 하나 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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