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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Apr 06. 2016

떼 끼에로 : 볼리비아 우유니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다.
그러므로 세상 탐험은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사이먼 레이븐

  그곳에 닿기 전에는 몰랐다. 소금 사막. 라파스에선 그곳을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 혹은 "Salt Flat"이라 불렀다. 호스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던 제임스는 내게 우유니의 Salt flat에 가 보았냐고 물었다. 나는 사하라 사막에서 보았던 Salt Lake를 생각했다. 사막으로 향하는 길에 놓여 있던 거대한 호수. 물이 모조리 증발해 버린 뒤 소금 덩어리로 변해버린 그 호수를. 제임스의 물음에 나는 이제 막 페루에서 왔노라고, 우유니라는 곳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게 우유니의 소금 사막에 꼭 가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곳이 "남미 최고의 장소"라고 했다. 그 말 외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최고의 장소. 나는 마추픽추를 남미 여행의 최고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또 다른 최고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최고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0 장소 : 볼리비아 우유니.


  살라르 데 우유니. 안데스 산맥 언저리 35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하얀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누군가는 우유니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하늘을 옮겨 놓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어떤 수식어로도 그곳을 완벽히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얀 대지에 물이 차면 마치 은쟁반이 된 듯한 평원에는 하늘이 비쳤고 그곳은 하늘인지 땅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누구의 어떤 표현이라도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우유니 소금 사막이다. 그곳은 비가 내려야 더 아름답다고 했다.


  우유니는 라파스에서 버스를 타고 10시간 정도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라파스에서 만난 마그다. 그녀는 나보다 10분 먼저 우유니를 향해 떠났다. 우리는 우유니의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우유니를 향해 달렸고 안데스 산자락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저 멀리 구름 사이로 섬광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내린다. 남미의 1월은 우기였다.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우유니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우유니의 아름다운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유니를 향해 질주하던 버스. 번개가 떨어지는 산 너머에 우유니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잠도 오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나는 2층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빨리 우유니에 닿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잘 아는지 버스 기사는 빠르게 버스를 몰았다. 왕복 2차선 도로는 좁았다. 조금이라도 핸들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바퀴에 흙이 닿고 있음이 느껴졌다.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에 가로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버스 앞을 달리는 트럭의 미등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버스 기사는 큰 트럭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답답했는지 호시탐탐 추월의 기회를 엿보며 트럭 뒤로 바짝 다가갔다. 버스와 트럭은 간격을 좁혔다 늘였다를 반복하며 한동안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그때였다. 트럭의 뒤쪽 미등에 강렬한 붉은빛이 들어왔다. 버스는 한창 트럭을 향해 속도를 높이던 중이었고,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울 만한 여유 공간이 없었다. 트럭의 뒤꽁무니가 빠른 속도로 나를 덮쳐왔다. 주변의 모든 승객들은 잠들어 있었고 나는 몸을 꿈쩍할 수 없었다. 온몸의 털이 솟구쳤다.

  "아악"

  놀란 나는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죽는 건가. 트럭이 내 눈 앞에 있다.

  휘청-

  버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퍽.

  트럭의 급정거. 예상치 못한 트럭의 속도 변화였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다행히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트럭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트럭의 왼쪽 귀퉁이에 부딪히면서 박살나버렸고 버스의 오른쪽 유리창에도 금이갔다. 한쪽 사이드미러가 망가져버린 버스는 길가에 멈춰 섰다. 급정거했던 트럭은 우리를 지나쳐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갑작스러운 흔들림. 나의 비명. 그리고 사이드미러가 부서져버린 버스. 사람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났고 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크래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행자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골아 떨어진 덕분에 이 가슴 졸이는 경험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버스 운전기사는 망가진 사이드미러와 금이 간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여 더 이상 유리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안데스 산맥의 이름 모를 마을 길가에서 우리는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천천히 우유니를 향해 갔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게 우유니에 도착했고 버스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10분 뒤에 도착할 줄 알았던 내가 3시간이나 늦게 도착을 해버렸으니, 나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사이드미러가 부서졌다. 차를 세우고 응급조치(테이프 감기)를 하는 중이다. 해가 밝자 버스는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 저 멀리 만년설이 보이고 산 너머 우유니에 도착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사막 투어를 신청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유니 거리의 몇 군데 여행사에 들러 2박 3일짜리 가격 투어에 대해 묻고 다니던 중이었다. 여행사마다 배낭을 둘러맨 여행객들로 붐볐다. 투어를 떠날 준비를 하며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무리. 한 여자가 여행사 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너희는?'


  네 명의 여자. 친구들끼리 여행을 온듯한 그네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hablas español?(스페인어 할 줄 알아?)"
  "sí(응)"


  기대에 찬 얼굴들이다. 한 템포 빠르게 그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떼 끼에로"

  까르르-까르르- 아르헨타나에서 왔다는 여자애들이 자지러진다. 나는 잘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여행사를 나섰다.  

※ 우유니 기차역.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지만 예전엔 소금을 실은 기차가 자주 다녔을 것이다. 우유니 거리 곳곳에는 조형물들이 있다(오른쪽)

짧든 길든 우유니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LC-"

  누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마그다였다. 오, 마그다! 나는 그녀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 했다. 늦었지만 무사히 이곳에 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여행 중 다치거나 병 때문에 고생하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그녀에게 투어 예약을 했냐고 물으니 아직 하지 않았다고 했고 몇 군데 가격을 물어본 곳 중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던 곳을 다시 찾았다.

  투어는 6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한 명 두 명이 여행을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행사에서는 오늘 하루 동안 투어 신청하는 사람들 명단을 받아서 팀을 꾸린다고 했다. 다른 여행사에서 신청하는 사람들까지 합쳐서 웬만하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팀을 꾸려줄 것이라 했다. 누구와 팀이 되어 만나게 될 지는 모른다.


  모두가 잠든 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흙냄새가 나다니. 그리운 봄내음이다. 우유니엔 이제 봄이 온건가. 촉촉한 흙냄새를 맡으며 다시 잠이 든다. 거리를 휘젓는 바람 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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