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기 때문에 더 강렬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걸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하지만 둘일 경우엔 더 멀리 간다.
- 아프리카 속담
"7시에 플라자 마요르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
마그다(Magda)로부터 온 페이스북 메시지였다. 다행히 마그다가 말한 시간까지는 1시간 반 정도 남아 있었다.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를 끝내고 이제 막 숙소로 돌아왔던 나는 식당 겸 바(Bar)가 있는 호스텔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제임스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맥주를 한 잔 들고 그의 곁에 앉아 말했다.
"내일 소금 사막(Salt Flat)으로 떠나."
제임스는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Great Salt flat."
그레이트. 소금 사막은 최고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또 하나의 기대감이 생기게 했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유니(Uyuni)'를 놓쳤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는 라파스를 떠나면 아마존 밀림지대를 향해 가려했었지만 아마존으로 향하는 것을 잠시 미뤄두었다.
0 장소 : 볼리비아 라파스.
메마른 도시,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헤어진 후 10개월 만이다(관련 글 <만남 그것은 헤어짐과 동의어 - 그곳에도 웃음소리가 있다>). 우리는 달도 없는 사막에서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인도를 떠나면 중동, 동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호주로 갈 것이고 호주에서 남미로 떠날 것이라 했다. 남미에는 11월 중순이나 말쯤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었다. 그녀는 직장이 있는 스웨덴으로 돌아가 6개월 간 일을 하고 난 뒤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3개월 정도 남미 여행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10월쯤에 남미로 가게 될 것 같다고.
"어쩌면 우리, 남미에서 만날 수도 있겠네?"
여행 이야기의 마지막 말이었다. 타르 사막을 걷는 낙타 투어는 끝이 났고 마그다는 폴란드를 거쳐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나는 자이살메르에서 며칠을 더 머물다가 바라나시로 떠났다.
페루 리마에 있을 때,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페루에 도착했다고. 너도 지금 남미에 있냐고.
쿠스코에서 그녀로부터 온 답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칠레를 지나 페루의 남쪽 아레키파(Arequipa)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에 가기 위해 푸노를 거쳐 코파카바나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은 라파스.
나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푸노로 갈 거야. 푸노에서 만날 수도 있겠네. 푸노에서 연락하자.
"그래 좋아. 푸노에서 봐!"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푸노에서 보자는 말을 했지만 우리는 푸노에서 만나지 못했다. 쿠스코 이후 우리는 주고받은 메시지가 없었고 나는 푸노를 떠나며 라파스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 티티카카 호수와 이별하며 라파스로 향한 것이다.
※ 숙소의 꼭대기. 루프탑 레스토랑 & 바 에서 바라본 라파스 시가지의 모습. 맨 오른쪽은 제임스.
※ 플라자 마요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뒤쪽으로 가면 여행자거리가 있다.
숙소에서 플라자 마요르 안쪽의 구시가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카페까지는 멀지 않았다. 여유 있게 숙소를 나선 나는 또 한 번 엇갈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카페 안을 한 번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지구 반대편에서 헤어짐의 순간을 맞이하며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를 기다린다는 것. 설레는 마음으로 만남의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나였지만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함이 더 컸다. 문이 열릴 때마다 기대와 실망은 반복되었다. 문이 열릴 때, 혹시나 그녀일까라는 기대감에 고개를 쳐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카페 곳곳에는 삼삼오오 모인 외국인 여행자들 무리가 있었고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매 순간 그녀의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것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7시를 넘었다. 이번에도 그녀와 엇갈린 걸까.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7시 10분이 지났고 이제부터 고민을 해야 했다. 자리를 지킬 것인가 이곳을 떠날 것인가. 아마 이곳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그녀와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부터 남미 여행을 시작해서 칠레를 거쳐 이곳까지 왔다. 나는 북쪽의 콜롬비아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 라파스에 닿았다. 볼리비아는 중간 지점인 셈이었고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장소를 여행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유니를 다녀온 후 나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향할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찾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다시 만날 인연이 아니었을까?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키가 큰 여자 한 명. 내 기억 속의 그녀였다. "마그다"라고 내가 외쳤다.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오! LC, 오랜만이야-"
가벼운 포옹. 짧았기 때문에 더 강렬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르 사막에서의 하루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대 엊그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10개월 만의 만남이지만 마그다를 불과 며칠 전에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 하나 의지할 것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친구를 만난 기쁨. 무엇보다도 그녀를 만났다는 것 그 자체에서 마음이 편안해져왔다. 인도에서나 볼리비아에서나 그녀는 변한 것이 없었다.
"우유니 소금 사막에 가 봤어?"
내가 말했다. 나는 내일 저녁에 우유니로 떠나는 버스 티켓을 끊어 놓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도 우유니에 가려했다며 "같이 가자"는 말을 했다. 그녀는 우유니에 들렀다가 우유니 동쪽의 포토시(Potosi)로 갈 것이라 했다.
"버스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네. 저녁 7시에 출발하는 버스인데 터미널에 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녀는 같은 버스를 탔으면 좋겠다고 했고, 내게 자신의 여권과 (내 표값과 동일한 액수의) 버스표값을 건네주며 표를 구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며 자신의 호스텔 이름과 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의 호스텔은 플라자 마요르 길 건너편 골목에 있었다.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를 함께 하고 돌아왔던 친구들이 차에서 많이 내렸던 곳이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자리를 먼저 떠나야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내일 정오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짐을 챙겨서 6시까지 버스 터미널 입구로 갈게. 내일 봐."
나는 함께 우유니로 갈 수 없게 된다면 호스텔에 들러 여권을 돌려주겠다고 했고 짧은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내가 타기로 한 버스에는 여분의 좌석이 없었다. 다른 버스를 알아보니 내 버스보다 10분 먼저 출발하는 버스에 좌석 하나가 남아 있었고, 버스표를 구입했다. 10분 차이면 거의 비슷하게 우유니에 도착하겠지. 같은 버스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할 수 있는 것마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희한하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나 사막 투어(인도 타르 사막 투어)의 추억을 함께 했던 인연이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한 번 사막 투어(우유니 사막 투어)를 함께 하기 위해 떠나다니. 사막의 아름다움을 함께.
마그다의 여권 속에 버스 티켓을 꽂아들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의 꼭대기층에선 오늘도 파티가 벌어지고있었다. 나에게 있어 라파스는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었지만 오늘이 라파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라파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 여행자 거리에는 각종 기념품과 옷 등을 파는 상점과 서점이 있다.
※ 볼리비아는 남미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꼭대기까지 뺴곡하게 드러차 있는 라파스의 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