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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31. 2016

데스 로드를 달리는 자전거 : 볼리비아 라파스

오늘은 죽은 사람이 없다.

여행과 장소의 변화는 정신에 활력을 준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라파스는 높았다. 산비탈을 따라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집들. 집들이 달라붙어 있는 산등성이 위로는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해발 고도 4000m 이상. 이제는 내가 이렇게 높은 고산지대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몸속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격렬하게 움직이던 심장. 생의 끝자락까지 갔다 온 듯한 쿠스코에서의 기억. 그날의 기억조차도 이제는 빛바랜 추억이 되어가고 있었다.



0 장소 : 볼리비아 라파스 - 코로이코.


  높이 올라왔다는 것은 그만큼 내려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한다. 그것은 언제나 생의 진리처럼 여겨져 온 것이 아닌가. 

  4700미터 높이에서 1100미터까지 내려간다는 것. 처음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나는 라파스에서 며칠을 더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팸플릿을 보는 순간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스텔의 게시판에서 발견한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Bike tour on the Death road)'에 관한 팸플릿. 자전거를 타고 4700미터 산 위에서 1100미터에 위치한 마을까지 산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내려간다. 비포장 산길을 따라 달리는. 말 그대로 '데스 로드'를 달리는 것이었다.  


  호스텔 안에 있던 여행사에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에 대해 물어보니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The world's most dangeruos road bicycle". 거창한 이름의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약을 했고, 직원은 나에게 다음날 오전 7시 반까지 투어 출발 장소로 가야 한다고 했다. "늦으면 안 돼요."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알렉산더 카페. 그곳에서 모여서 출발을 한다. 호스텔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호스텔은 시가지의 최상단쯤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내리막길을 따라 쭉 가면 되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누군가 나를 불렀다.

   "LC?"
  "Yes, here."

  인원 점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제시간에 맞춰 도착을 한 것이다. 오늘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의 이름은 알렉스. 그는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한 적이 있다며 나에게 유독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인원 점검을 끝낸 후 간단한 안전 교육이 있었고 우리 일행은 소형 버스에 올랐다.


  아침 햇살은 강렬했다. 어제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우리와 함께 흘러가는 구름. 저 멀리 산 위엔 어김없이 만년설이 놓여 있고 산등성이를 따라 흐르던 물줄기는 저 아래에서 폭포가 된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면서도 손에 잘힐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저 아래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간다.


산 꼭대기의 날씨는 쌀쌀했다. 우리는 저 길을 따라 신나게 달려갔다. 산길에 접어들기 전까진 마냥 즐거웠다.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의 출발점. 넓은 공터에는 여러 팀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 자신의 키에 맞춰 자전거를 배정받았고, 공터를 돌면서 자전거 안전 점검을 했다. 헬멧과 보호대는 필수였다. 알렉스는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절벽 아래로 종종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다며 절대로 헬멧을 벗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무리 답답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져도 꼭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도로 위로 나선 자전거의 행렬. 한 명 씩 한 명씩 간격을 두고 페달을 밟았다. 사실, 페달을 밟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리막길, 내리막길, 내리막길. 끝없이 아래로 향하는 길의 연속이었고 산꼭대기는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졌다. 


  "와~우! 골져스! 골~져스!(gorgeous)"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탄성.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내려갔다. 아직은 피부에 닿는 공기의 촉감은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은 춥다는 느낌이 아닌 상쾌함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바람을 가를 때 느껴지는 상쾌함.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창문을 열었을 때 차 안으로 마구 들이치는 바람의 느낌이 아닌, 바람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포근함과 상쾌함을 함께 전해주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 때, 알렉스가 주의 사항을 일러준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좁은 자갈길의 바로 옆은 낭떠러지이다.

※ 어제 내린 비 떄문에 길이 막힌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상습적으로 산사태가 일어나는 곳이다. 길을 복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오른쪽).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좁은 산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어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심하게 미끌렸다. 한쪽은 수풀이 우거져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벼랑이었지만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난간 같은 것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급경사가 즐비했고 모두들 조심조심 자전거를 몰았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모두들 자전거를 운전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 백 미터 아래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헬멧이고 보호대고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긴장감. 떨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했지만 갑작스럽게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여기서 갑자기 멈추면 내 뒤를 따르던 자전거들이 엉켜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 산길은 계속 이어졌다. 산길을 따라 3600미터나 되는 높이를 내려가는 게 금방일리가 없다. 산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차츰 낭떠러지를 옆에 낀 비포장 산길도 적응이 되어갔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들의 표정도 하나 둘 씩 살아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갑작스럽게 솟아 오른 듯한 거친 절벽과 그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 발을 헛디뎌 저 아래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협곡. 가끔씩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괄약근의 긴장을 한 시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스릴과 긴장. 가끔씩 간밤에 내린 비로 길이 끊어진 곳이 종종 보였다. 가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목적지인 '코로이코(Coroico)'에 도착했다. 와, 벌써 끝났구나.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 속에서 보내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도착 지점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역시나, 더 이상 달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아쉬움. 우리는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알렉스가 마지막으로 코로이코에 도착했다.


  "오늘은 죽은 사람이 없다. 다행이다."

  알렉스의 말 한마디는 우리를 웃음 짓게 했고 데스 로드의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모두들 무사히 코로이코에 도착했다. 기념 사진 한 장.


  점심 식사 시간이다. 식사 장소는 영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호스텔 & 레스토랑이었다. 우리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은 뒤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긴장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가지는 식사 시간. 여기저기서 투어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식당 밖에서는 원숭이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코로이코에서는 따뜻한 봄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산 새들의 지저귐과 온기를 살짝 머금은 바람. 모든 것들이 숲 속의 원두막에 앉아 쉬고 있는 우리를 노곤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수 십번 했던 하루. 그 하루도 이렇게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 숲 속에 있던 레스토랑 & 호스텔. 안드레이가 원숭이와 함께 놀고 있다(오른쪽).

※ 라파스로 돌아오는 길. 낭떠러지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 길 위로 폭포가 떨어지고, 그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이다. 겨우 차 한대가 지나가는 길.(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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