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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30. 2016

때로는 스쳐 지나갔던 풍경이 그립다 : 페루-볼리비아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흥미롭다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가끔은 미치도록 누군가가 그리울 때가 있듯이 때로는 우연찮게 마주쳤던 풍경들이 그리워 그곳을 다시 찾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주옥같은 풍경들. 그런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있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를 꺼낼 새 없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수록 우리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운좋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풍경일지라도 눈으로 보았던 감동, 머릿속의 이미지가 그대로 재현되기는 어렵다. 그 장면이 그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시 볼 수 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사진으로 남은 그 풍경들의 일부가 그때의 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그곳으로 안내하는 힘이 될 지도 모른다.



0 장소 : 페루 푸노에서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길


  나는 느리게 가는 방법을 택했다. 푸노에서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라파스(La Paz)까지 한 번에 가는 방법이 있었지만 로컬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고생 중독일까. 이번 선택은 복잡한 여정이 될 수도 있고 몇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 하나 내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길이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이 길을 통해 라파스로 갔을 것이다.


  오랜만에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한 번에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버스가 아니고서야 국경을 넘을 때는 최소한 네 번은 차를 갈아타야 한다. 택시 기사와 실랑이를 벌여야 할 수도 있고 혼자 국경을 넘게 되면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질 수도 있다. 사기꾼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아침 9시. 나는 푸노의 버스 터미널에서 융구요(Yunguyo)로 향하는 로컬 버스에 올랐다. 버스 창밖으로 가끔씩 저 멀리 티티카카 호수가 보이기도 했다. 티티카카 호수는 푸노에만 접해 있는 것이 아니라 페루와 볼리비아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호수였고 그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호수의 서쪽은 페루, 호수의 동쪽은 볼리비아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융구요의 터미널에서 국경 출입국 사무소까지 거리는 2km 남짓. 오토릭샤를 타고 두 나라의 접경지역 카사니(Kasani)로 간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은 잿빛 하늘. 나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페루 출입국 사무소에서 출국 심사를 마친 나는 종종걸음으로 국경을 넘어갔고 볼리비아 출입국 사무소에서 무사히 입국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볼리비아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오니 미니버스의 운전기사가 나를 부른다.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거점 도시인 코파카바나(Copacabana)로 가는 버스다. 나는 미니버스에 올라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좌석이 하나 둘 씩 채워졌고 만원이 되자 코파카바나를 향해 출발한다. 코파카바나로 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창 밖에는 여전히 티티카카 호수가 보인다.


  코파카바나도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코파카바나에서는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의 달섬(Isla de la Luna, Moon Island)이나 태양섬(Isla del Sol)으로 갈 수 있는데 여행자들은 이들 섬을 찾아가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티티카카. 호수 이름에서 묻어나는 낯섦과 호수가 품고 있는 태양과 달. 여행자들에게 있어 낭만적인 공간이 될 법 한 곳이다.


  여행자들과 장사꾼들. 그리고 사람들을 싣고 가기 위한 버스들이 한데 뒤섞인 코파카바나의 중심가는 푸노의 그것보다 혼잡하다. 자칫 정신줄을 놓았다가는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놓치기 딱 좋다. 여행자들을 한가득 실은 대형 리무진 버스들이 거리를 빠져나가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라파스로 향하는 18인승 중형 버스. 여닫을 때마다 접히는 부분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출입문은 수동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코파카바나의 혼잡함을 뒤로 한 채 버스는 라파스를 향해 달렸다. 30여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라, 나도 사람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배낭은 버스에 그대로 둔 채로.



  나는 이번에도 안 그런 척하며 사람들의 뒤를 밟는다. 사람들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티티카카 호수가 보이는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가 이제 막 도착한 곳은 '티퀴나(Tiquina)', 더 정확히는 '산 페드로 데 티퀴나(San Pedro de Tiquina)'였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건너편 마을의 이름은 '에스트레초 데 티퀴나(Estrecho de Tiquina)'. 사람 따로 자동차 따로 호수를 건넌다. 호수를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로컬 버스는 가장 짧은 이 길을 택해서 라파스로 향하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면 이제 더 이상 '티티카카 호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 자동차가 각각 다른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니. 이들에겐 그저 그런 일상의 한 조각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흥미로운 풍경이다.

  선착장에서 티켓을 끊은 나는 작은 모터보트(Lancha, 란차)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 호수 건너편 광장에는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작은 물고기 튀김(멸치/빙어와 비슷)을 먹으며 내가 타고 온 버스가 건너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티퀴나를 떠난 버스는 본격적으로 라파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달리는 이곳은 안데스 산맥의 고원 지대이다. 푸노와 코파카바나, 티티카카 호수의 해발 고도는 대략 3800미터. 라파스 역시 대략 3600미터에서 4200미터 사이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는 이 정도 높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다니. 무엇보다도 라파스로 향하는 길이 위치한 고원 지대에 펼쳐진 풍경이 일품이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낮게 떠 가는 구름. 1월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저 멀리 보이는 산 위에는 눈이 쌓여 있다. 만년설이다. 눈을 조금만 돌려 보면 구름 아래 만년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올라오는 들판. 그곳에서 밭을 일구는 사람들. 이곳엔 남미에서 가장 늦게 봄이 찾아오나 보다.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푸근해진다.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즐겁다.



  라파스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바닥이든 계단이든 사람들은 조금씩 자리를 만들어가며 버스 안에 자리를 잡았다. 가끔씩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면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렸지만 바닥에 앉은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냈는지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 눈에 띈다. 한 꼬마는 이방인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인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 본다. 꼬마는 내 곁에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푸노를 떠난 지 8시간. 라파스에 도착했다. 푸노에서 융구요. 융구요에서 코파카바나. 그리고 코파카바나에서 타퀴나를 거쳐 라파스까지. 천천히 오는 방법을 택했지만 생각보다는 일찍 도착했다.

  라파스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도시 맞은편의 만년설 쌓인 산 봉우리였다. 라파스로 오면서 보았던 고원 풍경. 버스와 나란히 달리던 구름. 보트를 타고 건넜던 티티카카 호수의 뒷모습. 그리고 버스에서 만났던 꼬마의 맑은 눈동자. 스쳐 지나갔던 모든 것들은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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