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참으로 단순한 이유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도.' 베로니카는 생각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는 존재했다. 여기, 이 방 안에, 저 밖에, 그녀를 둘러싼 산들 속에. 그리고 그녀의 눈 아래 펼쳐져 있는 광장에. 슬로베니아는 그녀의 조국이었다. (‥중략‥)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류블랴나는 신화나 다름없겠네.' 베로니카는 류블랴나의 조그만 광장이 바라다보이는 수녀원의 창문 밖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상상 속을 맴도는 아틀란티스나 레뮈리. 즉 잃어버린 대륙들처럼 말야. (‥중략‥)
대부분의 독자들이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걸 기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수도, 류블랴나는 더더욱. 바로 그때. 베로니카에게 남은 시간을 보낼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잡지사에 슬로베니아가 옛 유고슬라비아의 분열에서 생겨난 다섯 개의 공화국 중 하나임을 설명하는 편지를 쓰기로. 그것을 자기 삶의 마지막 행위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중.
베로니카는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 분노했다. 그것은 자신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집어든 프랑스 잡지 <옴므 Homme>에 실린 한 편의 글. 그 기사의 첫 문장에 분노했던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류블랴나. 이 얼마나 매혹적인 이름인가. 책의 주인공 베로니카는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그 순간에 류블랴나의 광장을 내려다보았고 그곳은 평화롭고 또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는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류블랴나에, 그리고 류블랴나의 그 광장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베로니카가 바라보았던 광장을 걷고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류블랴나로 향했다. 가끔은 참으로 단순한 이유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0 장소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에서 발칸반도 북쪽의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발칸 반도의 중심 베오그라드. 나는 그곳에서 방향을 바꿔 반도 서쪽 끝자락에 있는 류블랴냐(Ljubljana)로 갈 생각이었다. 테살로니키로부터 시작된 14시간 동안의 이동. 기차는 발칸 반도의 중심을 훑으며 천천히 북쪽으로 향했다. 두 번째로 찾은 베오그라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수도이자 현재 세르비아의 수도이다. 동유럽의 젖줄인 도나우강이 사바강과 합쳐지는 지점에 베오그라드가 있었다. 온화한 분위기 가득한 베오그라드에서 포근한 오후를 보낸 뒤 야간열차를 타고 류블랴나로 향했다. 서쪽 끝에 류블랴나가 있었다. 베오그라드에서부터 10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부터 꼬박 4일 만이었다. 3번의 야간열차. 기차를 타고 이동한 30시간.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했던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이토록 먼 길을 온 것이다.
※ 류블랴나 거리엔 비가 내렸다.
류블랴나 역. 나를 맞이한 건 잿빛 먹구름이었다. 이제 막 6월로 접어든 이곳 동유럽은 잔뜩 찌푸린 날씨다. 나는 서둘러 숙소를 찾아갔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 정갈한 마음으로 그곳에 서고 싶었다. 나는 샤워를 한 뒤 류블랴나의 광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류블랴나는 그 존재감만큼이나 아담한 도시였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했지만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로마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도시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도시 류블랴나였다.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자체로 보더라도 유럽의 여러 도시 국가를 제외하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작은 면적을 가진 나라였다. 베로니카가 분노했던 질문,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기자의 말은 어쩌면 슬로베니아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좋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베로니카가 의도했던 대로 슬로베니아와 그 수도 '류블랴냐'를 알게 되었고 이곳을 찾지 않았는가.
광장은 아담했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이나 파리의 콩코드 광장 심지어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을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비할 때도 매우 작은 크기다. 폭 50미터 남짓한 크기의 광장. 그렇지만 아담한 도시 류블랴냐에게는 더 없이 어울릴 만한 곳이었고 중세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서쪽으로 이탈리아,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를 접하고 있는 슬로베니아였지만 이곳 역시 발칸 반도에 속한 국가여서 그런지 동유럽의 느낌이 강했다.
베로니카가 머물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수도원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도 그곳의 창문을 통해 광장 한쪽에 서 있는 프란체 프레세렌의 동상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지나가는 한 청년에게 웃음 지어 보였을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는 프란체 프레세렌 동상. 그것은 광장의 상징이었다. 이 아담한 광장의 이름은 '프리셰렌 광장(Prešeren trg)'으로 불릴 정도니 그가 국민 시인으로서 얼마나 칭송받언 인물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 프레세렌 광장. 성프란체스카 성당 쪽에서 바라본 프란체 프레세렌의 동상(왼쪽)과 프레세렌 동상에서 성당(수도원)쪽을 바라본 모습(오른쪽)
나는 동상이 마주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류블랴나의 공기는 차가웠고 카페라떼가 내 몸을 부드럽게 녹여주길 바랐다. 노천카페에서는 베로니카가 자살을 시도했던 수도원이 보였다. 성프란체스가 수도원의 3층 건물. 저 방 어딘가를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던 것이겠지. 파울로 코엘료도 이 광장에 머물렀을 것이고 그 경험이 베로니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책을 읽었고 엽서 두 장을 썼다. 류블랴나의 상징 동물인 '용(Dragon)'의 실루엣이 담긴 엽서 한 장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모습이 담겨있는 엽서 한 장. 류블랴냐의 우체국 스탬프가 찍힌 엽서는 얼마나 이국적일 것인가. 류블랴나. 발음을 하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 뜻을 안다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 이 작은 도시의 이름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믿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사랑스럽다'라는 뜻의 류블랴나.
거리를 걷는 것 외엔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비 오는 거리는 조용했고 류블랴나 성에 올라 빗물에 젖은 도시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빠르게 걷지 않았다. 류블랴나를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변을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차를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정처 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류블랴나 시내에서 느낄 수 있었던 포근함은 침대까지 이어졌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류블랴냐에서의 둘째 날. 해가 뜨길 바랐지만 6월의 동유럽엔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류블랴냐였다.
※ 류블랴나 관통해서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 강변에는 노천 카페들이 많이 있다. 광장과 강을 주변을오 류블랴나의 볼거리들이 몰려있다. 류블랴냐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