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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Apr 21. 2016

흔들흔들 버스 타고 아마존으로 : 볼리비아 - 브라질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멈춰섰다.

관광객들은 그들이 어디에 다녀왔는지 모른다.
여행자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폴 세럭스

  계획은 때에 따라 달라졌다. 큰 그림 안에서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옮겼고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그곳에 가 보는 것으로 계획은 바뀌었다.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유니에서 다시 라파스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했다. 흔히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라파스와 우유니를 거쳐 칠레로 넘어가거나 그 반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가장 보편적인 여행 경로였다. 하지만 나는 에콰도르와 페루를 거쳐왔음에도 칠레, 아르헨티나를 택하지 않았고 다시 라파스로 돌아온 것이었다.



0 장소 : 볼리비아 라파스-구아야라메린.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라파스는 포근했다. 나는 볼리비아 북쪽의 아마존 지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아마존 밀림의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도시 포르투 벨류. 포르투 벨류에는 아마존강 여객선이 있었다. 3박 4일 동안 아마존 지역의 중심 도시인 마나우스를 향해 아마존 강 위를 떠 간다는 아마존강 여객선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볼리비아의 국경 도시 구아야라메린으로 가야 했고 그곳에서 아마존 강을 건넌 다음 버스를 타고 포르트 벨류로 가야 했다.


  아마존. 내게 있어 아마존 또한 남미 여행의 이유 중 하나였다. 밀림과 탐험.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아마존. 아마존이라는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 강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밀림 지대를 관통한다. 세계 최대라는 스케일과 마주한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세계 최대의 강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나는 아마존 밀림지대를 관통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존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기의 아마존은 더욱 힘든 곳이었다. 론니플래닛에는 라파스에서 볼리비아의 국경 구아야라메린으로 가는 것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있다.

  버스. 라파스에서 구아야라메린까지 버스를 타고 36시간에서 72시간 정도 걸린다. 건기에는 땅이 말라있어 비교적 빨리 갈 수 있지만(36시간) 아마존 습지대를 지나는 이 길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우기에는 72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우기에 이곳으로 갈 경우 4일 정도는 예상해야한다.


  버스를 타고 72시간 정도 가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빨라야 2박 3일. 3박 4일 또는 그 이상을 가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비포장 진흙길에서 버스가 속도를 낼 수는 없는 것이다. 20 ~ 3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은 것은 이제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7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선뜻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일주일에 두 편 있다는 구아야라메린행 비행기의 좌석을 구하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사실상 유일한 대안, 길고 긴 버스 여정을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라파스 북쪽 외곽의 Minasa-Yungas 버스터미널 근처의 버스 회사에서 구아야라메린으로 가는 티켓을 샀다. 그곳에서 볼리비아 북쪽 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이 출발한다. 주로 밀림 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이다. 나는 티켓을 구입하면서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잘못된 정보이길 바랐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3~4일 정도 걸릴 거예요."

  3일이면 3일이고, 4일이면 4일이지. 3~4일은 또 뭔가. 그렇지만 3일이면 최선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먼 길을 떠나는 버스 위에는 짐이 한가득 실렸다. 버스 출발 예정 시간인 12시가 한참 지났지만 사람들은 버스 위에 짐을 싣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버스 위에 가득 올려진 짐과 휘청거리는 버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짐 싣기를 마친 버스가 이제막 출발하려 할 때 빗방울이 창가에 맺혔다. 라파스의 마지막 모습은 비에 젖어 있었다.


※ 버스 위에 집을 싣고 있다. 포대자루와 침대 매트리스 등 각종 짐들이 실리는 모습(왼쪽). 아마존을 향해 출발할 때가되자 라파스에는 비가 내렸다(오른쪽).


  버스는 코로이코를 향해 달렸다. 데스 로드 자전거 투어를 할 때 갔던 곳이다. 그곳은 안데스 산맥의 바로 아래 밀림지대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 부를 법한 작은 도시였다.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며 안데스 산악 지대를 벗어났다. 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좁은 비포장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는 버스. 창 밖 바로 아래는 절벽이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올 때면 버스는 자리를 내어주느라 낭떠러지에 바짝 다가섰다. 그럴 때마다 버스의 뒷꼬리는 낭떠러지 경계를 넘어 허공에 떠 있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던 산악지대를 벗어날 때까지 가슴 졸여야 했다. 버스가 뒤로 조금만 더 간다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었다.


  해가질 무렵 산길을 벗어난 버스. 산길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울퉁불퉁한 산길을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마존 밀림 지대에 진입한 버스는 여전히 요동쳤다. 아마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길 곳곳은 움푹 패여 물웅덩이로 변해있었다. 첨벙청벙. 바퀴가 물 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물이 웅덩이 밖으로 쏟아져나왔고 버스는 휘청댔다. 웅덩이가 아닌 곳도 성한 길은 아니었다. 비포장 진흙길은 버스와 트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내가 탄 버스는 그 위를 천천히 지났다. 패이고 패인 길. 그 위를 지나는 버스는 휘청거렸고 나는 버스가 옆으로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손잡이를 꽉 쥔 채 창밖을 바라봐야했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볼리비아 꼬마들은 나를 보여 웃었다. 버스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눈이라도 좀 붙일 텐데 내 몸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공중 부양시키는 버스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아마존의 비포장 도로는 진창길이었다. 바퀴가 물웅덩이에 빠지자 버스 기사 아저씨는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냈지만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왼쪽). 루레나바크에는 여행자들이 많았지만 이곳에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왼쪽).


  쿵-

  날이 막 밝았을 때 버스가 길 위에 주저 앉았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왼쪽 뒷바퀴 하나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다행히 버스가 옆으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비내리는 아마존에 멈춰버린 버스. 버스 기사와 함께 승객 몇 명이 내려 2시간 동안 끙끙대며 버스를 웅덩이에서 꺼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모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버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덤프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덤프트럭과 버스 사이에 끈이 연결되었고 덤프트럭이 버스를 끌어준 덕분에 버스는 겨우 웅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웅덩이를 빠져나온 버스는 볼리비아 아마존 밀림 지대의 중심 도시인 루레나바크에 멈췄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곳에 내렸다. 거리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곳은 여행자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아마존이었기에 아마존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자들이 모여있었던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내렸다. 나는 아직도 목적지의 반의 반에도 못 미치고 있었다.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멈춰 섰다. 아침에 한 번. 점심때 한 번.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 저녁때 한 번. 유일하게 버스에서 내려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울렁거림이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버스가 멈춰 선 곳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버스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면 버스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멈춰서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경우에도 주변에 화장실이 없는 건 매 한 가지였다.


※ 아마존 강이 보인다. 상류임에도 불구하고 강이 매우 넓다(왼쪽). 덤불들이 자라고 있는 아마존 지역(오른쪽).

※ 아마존 지대에는 군데군데 작은 마을들이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아마존 원주민 마을의 휴게소에 있던 마네킹(오른쪽).

※ 기사 아저씨가 펑크 난 타이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펑크는 흔한 일이었다(왼쪽). 버스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창밖을 바라본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바다에서 배를 타는 기분이었다(오른쪽).


  펑-

  또 한 번 일이 터졌다. 이번엔 타이어 펑크가 난 것이다. 휘청휘청 심하게 요동치던 버스가 또 한 번 멈춰 선 것이다. 볼리비아에서 타이어 펑크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운전기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펑크가 난 타이어를 살펴보더니 그대로 차에 올라 버스를 몰았다. 저녁 식사를 하려했던 마을이 얼마 남지 않은 곳이었다. 버스 기사는 마을에서 타이어를 교체했다.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지나쳤던 한 마을은 마을 전체가 빗물에 잠겨 있기도 했다. 우기의 아마존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이 실감 났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루할 정도로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아마존 밀림 지대의 풍경. 특별할 것은 없었다. 길 양쪽에는 나무 숲이 우거져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이 있었다.

  아마존에는 소가 많았다. 나무들을 베어내고 불태워 만든 목초지에는 풀이 자라났고 그곳에서는 소가 길러졌다. 마을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목장이 어어져 있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소떼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녔다. 말을 타고 다니며 소떼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  아마존의 풍경. 모든 곳에 밀림이 우거져있는 것은 아니다. 목초지가 많았다. 이곳에서는 소들이 길러지고 있다.

※  50시간 만에 도착한 구아야라메린. 얼마나 기쁘던지. 버스 안에서 나를 놀리던 볼리비아 꼬마들(오른쪽).


  라파스를 떠난 지 이틀 밤이 지났을 때 드디어 구아야라메린에 도착했다. 50시간 만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하루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 출입국 사무소로 향했고 출국 스탬프를 찍은 뒤 보트를 타고 브라질로 넘어갔다. 그곳에서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조용한 브라질의 국경 마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승합차는 포루투 벨류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매끄럽게 달렸다. 떨림이 없는 부드러운 움직임. 남미의 버스에서 처음 느껴보는 안락함이다.

  해 질 녘, 마나우스로 떠나는 여객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배가 이제 막 선착장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나는 배에 오르기 위해 달렸지만 승선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음 배는 5일 뒤에 출발한다고 했다. 내게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갈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해먹을 쳤다. 선착장에서의 5일. 해먹을 치고 보낸 4박 5일간의 선착장 생활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 브라질 국경에서 프루트벨류로 향하는 버스에서 나를 신기한듯 바라보던 꼬마(왼쪽). 여객선의 선착장(오른쪽). 여객선의 선착장에 해먹을 치고 배가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 아마존의 풍경.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답게 번지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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