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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Apr 23. 2016

아마존의 과외 선생님 : 브라질 포르투베유

스페인어도 영어도 안 된다면 몸으로 이야기하면 된다.

만난 사람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

- 탈무드

  사람들이 하나둘씩 강가로 모여 들었다. 내가 선착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다음날 파울리나와 마르코가 선착장으로 왔다. 배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선착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처음 만났지만, 돈을 모아 선착장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마을에 장(Market)이 설 때면 시장을 돌며 사온 것들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흐르는 아마존강의 물살이 전해주는 아늑함. 아마존 강가에서는 급할 것도 욕심을 부릴 것도 없었다. 그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0 장소 : 브라질 포르투베유.


  강가로 모여든 사람들. 나는 주로 마르코 그리고 파울리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찍 선착장에 모여든 사람들 중 말이 통하는 사람이 그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파울리나는 칠레 출신이었고 마르코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었지만 둘 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대학을 다니는 연인이었다. 파울리나는 영어를 잘 했고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으며, 마르코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알았다. 나는 주로 짧은 영어를 써가며 그들과 대화를 했고 가끔은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안 될 때는 몸짓으로, 그것 마저도 힘들 때는 어리숙하게 더듬더듬 일본어를 써가며 파울리나와 이야기 했다. 파울리나는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할 때 일본어를 배웠다고 했다.


※ 내가 제일 먼저 선착장에 도착한 외국인 여행자였고 그 다음이 파울리나와 마르코였다. 우리는 배가 없는 선착장에서 생활을 했다.

※ 아마존 강의 노을은 매일, 매 시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에 한 번 소나기가 내리고나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던 아마존 강이다.

※ 선착장 주변의 강변 모습(왼쪽)과 주변 마을(오른쪽). 포르투 벨류는 아마존 강의 상류에 속했지만 그 크기는 우리나라의 강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스케일을 자랑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느라 호주에 몇 달 머물기도 했으며, 학창시절을 지내며 오랜 시간동안 영어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어 실력은 아주 짧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느낀 언어에 대한 아쉬움은 스페인어 실력이 기초 수준이라는 것이 아닌 내 영어 실력이 짧다는 것에서 왔다.

  라파스의 호스텔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할 때, 모두가 화기애애 하게 대화하며 웃었지만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야기의 흐름이 한 템포씩 느려졌다.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에서 온 친구들. 그들 모두가 내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긴했지만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흥미진진한 액션이 펼쳐지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갑자기 버퍼링이 생겨 몇 초간 정지되었다가 슬로우 모션으로 장면이 전개될 때의 느낌이랄까. 그들의 모국어는 영어였고 영어가 사실상의 세계 공통어라고는 했지만, 나는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는 한국어 전공자였을 뿐이다.

  소통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아쉬움은 아마존에서도 느껴졌다. 아마존 강가로 모여든 사람들은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그밖에 페루, 콜롬비아, 칠레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왔다. 모두들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이거나 스페인어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외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마존 강가에 있던 유일한 동양인 여행자였고 많은 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 주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마음 한편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나는 브라질에 있었지만 상점, 그리고 그리에서 습관적으로 스페인어로 이야기했다. 스페인어로 말을 하고 나면 '아차'하는 생각에 포루투갈어로는 뭐였더라를 기억해보려 했지만 좀처럼 포르투갈어가 입에 붙지는 않았다. 기본 회화만이라도 공부해야겠다며 가이드북 뒤에 붙어 있던 포르투갈어를 외우려고했지만 머릿속에선 스페인어와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선착장 앞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마르코가 내게 물었다.

  "LC, 포르투갈어 배워볼 생각 없어?"  
  "혼자 공부중이긴 한데 생각보다 어렵네. 여행하려면 배우는 게 좋지"

   나는 무엇이든 배워 놓으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자 마르코는 자신이 포르투갈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파울리나와 함께 스페인어와 영어를 가지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뭐든 배워 놓아서 나쁠 건 없다. 뭔가를 배운다는 일은 내게 있어 항상즐거운 일이었고 의욕이 넘쳤다.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일은 그 식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단어에서부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까지. 숫자조차도 헷갈렸다. 스페인어와 비슷한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포르투갈어였다. 시작부터 머리가 지끈거렸고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찾아왔다. 하나씩 하나씩 뭔가를 할 때 마다 마르코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번갈아가며 말해주었다.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시작한 첫 날. 마르코도 나도 의욕에 차 있었고 마르코는 내게 많은 포르투갈어를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아직 혼란스러웠다. 스페인어와 영어 그리고 포르투갈어가 뒤섞여 세 가지 언어 모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둘 째날도 포르투갈어 강습은 계속되었다. 더 많은 단어와 문장이 내게 쏟아졌다. 마르코는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포르투갈어로 이야기 했고 파울리나는 영어로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마르코의 말을 여러차례 되뇌었다. 그렇지만 그 말들은 도무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질 못했고 그대로 흘러가 버렸다. 포르투갈어를 배우기로 한 지 3일째가 되었을 때, 나는 마르코에게 말했다.

  "포르투갈어는 포기해야겠어."


  나는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일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마르코는 열심히 가르쳐주었지만 그의 노력에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포르투갈어보다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브라질을 벗어나면 또다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를 여행해야 했다. 언어가 중요하긴했지만 머리를 쥐어짤 정도로 힘들게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도 영어도 안 된다면 몸으로 이야기하면 된다.


  "고마워 마르코, 스페인어에 집중해야겠어"

  마르코는 "포르투갈어도 쉬운데"라고 했지만 내겐 너무나도 먼 포르투갈어였다.  


※ 선착장으로 접근하고 있는 배. 배는 이틀 동안 선착장에 정박하며 음식과 식수를 실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배가 들어오자마자 배에 올라 해먹을 친 모습(오른쪽).

※ 출항 하는 날 오전, 여객선의 3층은 여행자들의 해먹으로 가득찼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선착장에는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들어왔다. 우리는 배의 맨 꼭대기, 여행자들이 주로 자리를 잡는다는 3층으로 올라가 해먹을 설치했다. 배는 이틀 동안 선착장에 정박해 있을 예정이었다. 3박 4일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실어야했고, 식수를 채워야 했다.

  아마존 강가에서 맞이한 또 하나의 아침. 아직은 내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해먹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였다. 파울리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LC, 어서 일어나서 여기로 와봐. 저기 분홍 돌고래가 있어. 핑크 돌핀!"


  내가 파울리나와 마르코가 서 있는 곳에가서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을 때, 핑크빛 돌고래는 강물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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