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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Apr 20. 2016

백야의 도시에 찾아온 봄 : 에스토니아 탈린

탈린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건물들은 여행자들을 신비의 세계로 이끈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어떤 활동보다 그 일을 풍부하게 드러내 준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도시엔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우리가 흔히 밤이라고 부르는 것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다. 리가를 출발한 버스가 탈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숙소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지만 태양은 아직도 나를 비추고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아직은 환한 대낮 같았지만 숙소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았을 때는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거리는 환했다. 거리는 11시가 넘어서고 나서야 거리는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둠은 찾아오지 않았다. 두꺼운 커튼이 도미토리의 창문을 가렸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잠을 청했다. 밤이 찾아오지 않는 탈린이었다.



 장소 : 에스토니아 탈린


  비가 내리는 탈린의 거리는 추웠다. 6월 중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부르르 떨어야했다. 한국이었다면 늦겨울 혹은 아주 이른 봄의 날씨에나 느껴질 법한 공기. 같은 발틱 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의 리가나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에서 느끼던 것보다 거리는 차가웠다. 북쪽의 발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나를 건물 안으로 밀어넣었다. 따뜻한 공기가 그리웠다. 내 옷은 탈린의 추위를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얇은 것이었고 비가 내리는 탈린의 구시가를 걷던 나는 일찍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희미한 어둠만이 스밀 뿐이었고 아침은 남쪽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탈린은 백야(白夜)의 도시였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은 맑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 온 뒤의 맑음. 그 어떤 날보다 맑고 투명한 거리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천둥번개까지 동원해가며 요란하게 창문을 두드리던 빗방울은 공기 중의 먼지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쓸어가 버렸고 그 자리엔 환한 햇살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제와는 너무 다른, 발트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포근함과 향긋함 그리고 흙내음과 풀냄새가 뒤섞인 봄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나무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나며 바람에 한들거렸다. 나는 구시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어제는 추위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길이다. 언덕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고 더러는 관광 가이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곳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 젊은 커플이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하며 내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카메라를 도둑맞을까봐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선뜻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을 못 하였다는 남자. 그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여행자처럼 보였기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말하며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다.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경치가 좋아서였을까.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했고 행복해 보였다. 오래된 도시는 아름다웠다. 발트해를 뒤에 둔 작은 도시는 빛나고 있었다.


※ 구시가 언덕으로 오르는 길. 화창한 햇살이 나타나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안내표지판이 인상적이다.

※ 언덕의 포토존에서 바라본 탈린의 구시가. 발트 3국 중에서도 유독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그런지 탈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았던 곳. 파스텔 톤의 벽과 붉은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시가에 들어섰을 때,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곳의 건물들은 동유럽이나 서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과는 달랐다. 각진 모습이 단정해 보이지만 건물들은 분명 온화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탈린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건물들은 여행자들을 신비의 세계로 이끄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발트 3국 중에서 가장 아늑한 장소라고나 할까.

  탈린만의 색채가 묻어나는 이곳 구시가 또한 리가의 구시가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약소국으로서 수난의 역사를 가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800년 이상 그 모습을 잘 간직한 이곳에는 개업을 한 지 600년이 다 되어가는 약국이 있을 만큼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공간이기도 하다. 햇살 가득한 오후, 탈린의 구시가 시청 앞 광장에는 즐겁게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구시가 곳곳에서는 어김없이 음악 소리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길가에 자리한 노천카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발틱의 사람들은 참으로 유쾌해 보인다.


※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왼쪽)은 러시아 정교회의 양식이 잘 드러나는 탈린 구시가의 성당이다. 탈린은 유럽의 루터교와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눈에 띈다. 구시가의 입구(가운데)와 입구 주변에 있는 꽃을 파는 상점(오른쪽).

※ 구시가의 노천 카페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모습.

※ 1422년 개업한 이래 10대째 약 600년 간 이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약국이다(오른쪽).

※ 시청앞 광장.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는 구시가를 벗어나 해변으로 갔다. 바다 건너에 핀란드가 있다고 했다. 핀란드의 헬싱키까지 직선거리로 약 80km. 배를 타고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신비의 나라 핀란드가 있다. 당장이라도 발트해를 건너는 배에 올라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해변에 서서 바다 위를 떠 가는 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북유럽이 있지만 갈 수는 없었다. 나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야 했다. 남쪽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한 탓에 이제는 어디론가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러시아에는 지정된 날짜 안에 입국을 해야 했고 크라쿠프에 머물 때 예약 해 두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 티켓을 받으러 가야 했다.

  물결이 넘실대는 발트해에는 상쾌함과 아쉬움이 함께 존재했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가로수길.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 민들레 풀씨가 바람에 흔들렸다. 발트해를 타고 탈린에 찾아온 봄, 민들레 풀씨가 바람을 타고 폴폴 날아올라 봄을 퍼트렸다. 나는 봄을 따라 걸었다.


※ 발트해. 핀란드로 가는 여객선이 보인다.

※ 시내의 중심가(왼쪽). 밤 11시가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 탈린이다(오른쪽).


  내 삶에에 다시없을 또 하나의 봄날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탈린에서 맞이하는 봄의 아늑함. 밤이 없는 도시에서 어둠은 무의미했다. 어둠이 없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쾌활했고 언제, 어디서든지 웃었다. 나 또한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고 탈린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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