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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Sep 19. 2016

쿠바의 밤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 쿠바 하바나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나라에요!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낮에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강물이 흐르면서 내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 모습을 두려워 하늘을 바라보며 강을 건넜다. 밤의 강은 그 소리가 거칠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박지원은 하룻밤에 강을 아홉번 건넜다고 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고 기괴한 소리가 들릴 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전혀 두려워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쿠바의 한 아파트. 건물 사이로 달이 떠올랐다.

0  장소 : 쿠바 하바나.


  나는 허름한 골목에 자리잡은 싸구려 까사(숙소)에 머물렀다. 복층형 구조로 되어 있는 낡은 아파트의 다락방을 빠져나와 골목길에 접어들 때면 주변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흙먼지 날리는 거리. 누가 쓰러져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빛바랜 거리가 아파트 뒤쪽의 길이었고, 그곳을 지나야만 하바나에서 유명하다는 재즈 클럽과 댄스 클럽과 하나바의 극장과 공연장들에 닿을 수 있었다.

   어둠이 도시를 완전히 삼킬 무렵부터 희미한 빛을 내뿜는 가로등. 하지만 골목 저 안쪽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하바나의 골목 저 끝은 완전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곳엔 적막이 감돌 뿐, 골목 저 끝에서는 모든 것들이 소멸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골목 저편으로 갈 수가 없었다. 어둠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나를 싸구려 까사로 되돌아 오게끔 만들었다.


하바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까삐똘리오. 쿠바에 어둠이 잦아들고 있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La Habana)'는 매력적인 곳이다. 허름한 골목들이 때로는 두렵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낮의 골목과 밤의 골목은 너무나도 다르다.


 이튿날, 나는 또 다시 골목과 마주했다. 어둠 저 너머에 있을 빛을 찾아가야 했다. 폭풍우 휘몰아치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등대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의 빛을 갈구하는 선장의 마음과 같았다고나 할까. 골목에는 적막이 감돌았지만 내 마음은 온갖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나를 따르는 것은 주황빛 가로등이 만들어주는 그림자 뿐이었다. 나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낡은 벽면을 따라 걸었다. 어디까지 가야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치노! 치노!(Chino, 스페인어로 '중국인'을 뜻한다)".

  거리에 울려펴전 목소리. 나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한 차례의 울림이 사그라진 뒤, 잠시 후 똑같은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

  "하포네스! 하포네스!(Japones, 스페인어로 '일본인'을 뜻한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도저히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림자마저 사라진 거리에서 홀로 걷고 있던 나였는데,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소리친 것인가. 나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거리를 통과해서 극장까지 갈 지, 아니면 다시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가야 할 지. 


  어느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의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재즈 클럽이든 공연이든 뭐 든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어둠이 깔린 거리에 내동댕이쳐 졌고 나는 싸구려 까사로 되돌아 갔다. 내가 까사의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주인 아주머니는 거실에서 음악 공연 DVD를 보고 있었다. 쿠바 음악이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내일 저녁에는 댄스 클럽에 갈 것이라고 했다. 골목 저 편의 어둠 너머에는 음악과 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닿지 못했다. 쿠바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고 클럽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을 터였다. 다락방 침대에 몸을 뉘였을 때 아쉬움이 몰려왔다. 피곤한 몸을 좀 쉬게 해 주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라며, 나 스스로를 위안할 수 밖에 없었다.

귀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보인다.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나라에요!

  혁명광장을 지나 신시가(新市街)의 사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객들이 내게 한 말이다. 쿠바에 온지 삼일째인 내가 이틀 동안 밤에 숙소에서 잠을 자야했다고 이야기하자 그들은 내게 오늘 저녁에 시간이 괜찮으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재즈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신시가의 사거리를 지나 바닷가에 이르렀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하바나의 해안도로. 이곳은 어쩌면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일지도 모른다.

  어제, 그리고 이틀전에는 지나지 못했던 길을 지나갔다. 가까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거리는 어두웠고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지만 어제와 그제 느꼈던 두려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골목은 단지 허름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평범한 건물이었으며, 낮과 다른 것이라곤 사람이 없다는 것과 어둡다는 것 뿐이었다. 오늘은 이름모를 누군가가 나를 향해 "치노, 하포네스"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거리는 평온했고 나는 그 거리를 빠져나와 구시가로 접어들었다. 구시가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재즈 카페에서의 재즈 공연. 쿠바에서 재즈 공연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음악 클럽에서의 공연 감상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쿠바에서 음악을 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쿠바의 밤에는 공연이 많이 열렸다. 큰 공연장 앞에는 발레 공연과 연주회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술집의 무대 위에서는 무용수들이 나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고, 사설 댄스장에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쿠바의 밤은 흥미로운 볼거리, 놀거리들로 가득했다. 내게서 두려움이 걷히자 수 많은 빛들이 내게 쏟아졌다. 물론, 활기차고 정열적인 쿠바의 모습은 낮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재즈 공연을 볼 수 있다. 하바나의 구시가 어디서든!
해가 진 뒤, 구시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밤 늦은 시간이지만 불을 밝힌 구시가의 광장.


  쿠바에서 새로운 빛을 발견 한 날 이후, 나는 밤이면 밤마다 이곳 저곳 쏘다니며 공연을 보았고 재즈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재즈를 들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밤늦은 시간까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쿠바의 시내버스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운행을 했으며 사람들은 공원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쿠바의 밤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나는 착각 또는 편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을까. 


자정이 넘은 시각. 까삐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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