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아닌 안부, 그게 친구였다
며칠 전 헛똑똑이가 영화 ‘친구’의 명장면을 다시 봐서 그런지, 오늘 아침부터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에 괜히 예민해집니다. 이벤트를 알리는 광고, 초대를 가장한 광고, 증권가 찌라시로 채워진 카톡들 사이에서 그래도 하루를 알리는 카톡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팔지도 않고, 나를 설득하려 들지도 않고, 굳이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는 그런 카톡. 내용은 대게 비슷합니다. ‘오늘 어떤지’나, ‘뭐하고 있는지’ 또는 우리 둘만 아는 중요하지 않은 드립이나, 지나간 이야기들입니다.
그들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휴대폰 화면에 비쳐진 헛똑똑이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걸려있습니다. 그들과의 이야기는 항상 에너지가 남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서로를 배려하고 안부와 응원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대화 속에는 조언도 해결책도 없지만 서로 위하는 마음과 항상 똑같습니다.
헛똑똑이가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싫어서라기보다, 이제는 이유 없는 만남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설명하는게 피곤해졌습니다.
새로운 관계에는 항상 설명이 따라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전의 헛똑똑이는 그 설명마저 나를 증명하는 과정이라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해주는 사람이 편해졌습니다.
둘째, 감정의 회복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예전에는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웃고 넘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번 불편해지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던 사람, 상처를 받아도 안전했던 사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셋째, 관계에도 ROI를 계산하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이 끝나면 에너지가 남는지, 아니면 빠져나가는지. 속물 같지만, 계산적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솔직히 시간보다 에너지가 더 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넷째, 이미 충분히 만났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헛똑똑이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고, 굳이 다 겪어보지 않아도 어떤 관계가 오래갈지, 어디서 멈출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만남이 줄어든 게 아니라, 선별이 빨라졌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이라는 노래가 있듯이, 연극을 해서 만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연극은 필요합니다. 사회에서는 역할이 있고, 우리는 그 역할 덕분에 관계를 시작합니다. 회사에서의 나, 아버지로서의 나, 아들로서의 나,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나. 하지만 그 연극이 끝났을 때 함께 남아 있는 사람은 솔직히 많지 않습니다. 조명이 꺼지고, 분장이 지워지고, 대사가 사라졌을 때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관계만이 비로소 친구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연기를 잘해서 이어진 관계는 연기를 그만두는 순간 흔들립니다. 반대로 연기가 필요 없어도 이어지는 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버팁니다. 그래서 헛똑똑이는 연극이 끝나고도 남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박수를 받는 대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습니다. 그냥 카톡 말고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켜준 사람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남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