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과 아버지의 한마디
헛똑똑이의 고향은 경남의 작은 도시이고 현재 결혼을 하고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퇴근길이나, 점심 먹고 노곤할 때 잠을 깨기 위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곤 합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식사는 하셨는지, 문화센터는 잘 다녀왔는지, 파크골프는 잘 치고 오셨는지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한, 일상적인 대화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대화 도중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궁색하게 살지 마라’ 학창시절 ‘공부 열심히 해라’ 이후 아버지로부터 처음 듣는 직접적인 명령형이었습니다. 들었을 때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궁색’ 헛똑똑이는 새삼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1. 살림이 곤궁하고 매우 가난하다
2. 말이나 태도, 행동의 근거가 부족하여 떳떳하지 못하다.
먼저 ‘매우 가난하다’라는 의미로 헛똑똑이 자신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외벌이에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매우 가난하다’라는 표현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구두쇠처럼 살아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끼고 절약하는 집안 내력을 감안하더라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비교하면 아직 절반도 못 따라갑니다.
그래서 헛똑똑이는 국어사전의 두 번째 의미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말이나 태도, 행동의 근거가 부족하여 떳떳하지 못하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최근의 헛똑똑이는 무엇을 결정을 할 때마다 한발 물러서 있었습니다. 받아야 할 것을 정당하게 요구하지 않았고, 의견이 있어도 침묵을 유지하거나 “괜찮습니다”라는 말로 정리하였습니다. 이전에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한 질문 앞에서도 상황과 분위기를 먼저 살폈습니다. 틀릴까 봐서라기보다, 불편한 사람이 되기 싫었고 논쟁 없이 평온하게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 전에 적었던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임금은 옷이 없었지만, 가장 궁색했던 사람은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보고도 말하지 못한 사람들, 의심했지만 환호를 하던 사람들, 자기 검열을 예의와 충성으로 착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스로를 조금씩 낮추며 안전한 쪽으로만 몸을 숨겼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말은 ‘돈을 더 벌어라, 아껴 쓰지 마라’도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당당해라, 침묵으로 삶을 유지하지 마라, 네 목소리를 내라”
평소 “공부 열심히 해라” 말고는 명령형을 쓰지 않던 아버지가 그날 유독 짧게 말한 이유는 긴 설명보다는 경고를 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아버지의 진짜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궁색함은 통장에서 시작되지 않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침묵하는 태도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것.
다가오는 설날에 정확한 뜻을 아버지에게 물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