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추리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한 작가
어릴 때부터 책을 꽤 많이 읽었고 그중 추리소설은 단연코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들을 읽고 나니 그 뒤에 읽었던 책들은 어쩐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마지막 몇 페이지가 펼쳐지는 순간,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포와르 탐정이 범인을 지목하던 그 순간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그 순간 나의 진로는 탐정으로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주변에 책을 읽는 친구는 꽤 있었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친구는 거의 없었기에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반에서 친구들 간 소소한 사건이 벌어지면 내가 셜록이 되고, 나의 단짝 친구는 나랑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왓슨이 되어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또래 아이들이 아이돌에 열광할 때 추리소설에 열광하고 탐정의 꿈을 키우는 아이. 왜 걱정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좀 더 커서는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진로에 가까운 책들을 읽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어는 정도 자리를 잡은 뒤 한 권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름하야 B.A. 패리스의 테라피스트.
그 책은 없애기는 그렇고 새롭게 개조하기에는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 겨우 명백만 유지하는 전 직장이었던 회사 내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 당시 기준으로 나름 신간이었을 텐데도 아무도 빌려가지 않았던 터라 냉큼 집어왔다. 딱히 엄청난 기대를 하고 빌렸다기보다는 출퇴근 시간이 길었던 터라 그 시간을 때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B.A 패리스라는 이름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읽는 순간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이 책은 주인공이 겪는 상황을 심리적으로 파고들어 나중에는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뭔가 다급해지고 분명히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은데 주인공 주변인물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서 오는 답답함, 점차 고립되고 있음을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면서 괴로워졌다. 그리고 그 뒤에 새롭게 펼쳐지는 전개는 쾌감은 물론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지게 했다.
이 책을 필두로 작가의 초기작이었던 '비하인드 도어', '딜레마', '브링미 백' 등을 읽어 나가면서 이 작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스릴러 심리의 대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교묘하게 조종하는 최근 많이 회자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 등을 잘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 책들을 보고 난 뒤 현실에서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스라이팅 사건 등을 보면서 현실을 반영한 작가의 역량을 느끼며 서늘해지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스라이팅을 포착한 예리함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 작인 '프리즈너'와 '게스트'도 서점에 가서 우연히 발견하곤 단숨에 읽었다. 납치되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프리즈너는 이전보다는 좀 다른 전개에 생각보다는 다소 실망했지만 게스트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교묘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계속 맞닥 드리게 되는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해서 읽으니 뭔가 불편하고 긴장이 계속되었는데 마지막에 퍼즐이 맞춰지면서 아 역시 B.A. 패리스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감히 평하건대, 한층 더 진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후 본격적으로 추리, 스릴러에 빠지면서 또 여러 다른 작가들을 알게 되어 이 작가를 처음 마주했을 때만큼의 희열과 충성심은 다소 옅어졌지만 원조는 그래도 원조인 것이다. 다시 추리의 세계로 끌어들인 B.A. 패리스는 나에게 결코 단순한 의미일 수 없다.
지금도 누군가 읽을거리를 물어보면 이 작가의 테라피스트를 추천하곤 한다. 그만큼 강렬했고 나의 무대를 추리, 스릴러로 다시금 끌어온 일등 공신이다.
심리 스릴러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비하인드 도어, 브레이크 다운, 테라피스트, 게스트를 추천한다.
* 내가 읽은 책
- 비하인드 도어
- 딜레마
- 브링미 백
- 브레이크 다운
- 테라피스트
- 프리즈너
- 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