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어 마침내 나의 세계로 들어온 작가
스며든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딱 이거다'라고 느끼지는 못해도 시간 차를 들여 반복해서 만나게 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빠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나에겐 그리어 핸드릭스 & 세라 페카넨 콤비가 그랬다.
실제 내가 책을 읽는 스타일은 우연히 발견해 읽은 책이 마음에 들면 금세 그 작가랑 사랑에 빠지고 그 작가의 책들을 모조리 찾아서 굶주려 온 것처럼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어 읽고, 잠을 줄여가며 읽는다.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B.A. 패리스의 작가의 책이 그랬다.
그런데 그러기엔 좀 애매한 책들이 있다. 재밌긴 한데 완전히 흠뻑 빠져들어 다른 책들을 마구 읽어내고 싶은 정도까지는 않은, 남녀 사이에서 말하는 그 마음까지인 그 정도. 충분히 즐기긴 했으나 그다음이 딱히 궁금하지는 않은.
그런데 그 작가 책인 줄 모르고 시간 차에 걸쳐 읽었던 책들 '나의 친절하고 평범함 친구들', '익명의 소녀', '우리 사이의 그녀'가 정리할 때 보니 다 같은 작가들이었다. 한 권과 다른 권 사이에 텀이 6개월 혹은 해가 바뀐 탓에 쉽사리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전작들은 좀 애매한 감이 있어 완독 후 제목만 기억하고 있었고 맨 마지막으로 읽었던 '우리 사이의 그녀'를 보고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니 이미 읽었던 책들이었던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이 작가들 책들과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3번이나 만나게 되었고 3번째에 비로소 의식하며 스며들게 되었다. 이렇게 또 다른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우아한 심리게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은 편집자와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두 작가가 만나서 쓴 것이어서 그런지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한 그 미묘하고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밀도 있게 포착해낸다.
페이지 곳곳에 통계가 제시되는데 아마도 탐사보도 기자 출신이라 실제 통계를 바탕을 두고 집필한 탓이 아닐까 괜스레 추측해 본다. 그래서인지 문체 역시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중심의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그렇지만 그 간결하면서도 서늘함이 느껴지는 문체가 긴장감은 더욱 고조시키고, 보이지 않는 갈등은 더욱 두드러지게 했으므로 스릴러에는 오히려 제격이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서늘함도 느껴지는. 그래서 더 아찔한.
이들 책에는 멋지고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소 유약하고 소심한 주인공들은 이들을 동경하고 이들처럼 되길 꿈꾼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균열이 생겨나고 어긋나기 시작한다.
앞서 B.A. 패리스의 책들이 남, 녀 사이의 가스라이팅을 주로 다루었다면 그리어 핸드릭스/세라 페카넨 콤비는 여자들 사이에서의 미묘함을 다뤘다. 그러기에 더 우아하고, 그러기에 더 날카로웠다. 직접적인 물리적인 폭력은 없지만 더 공포스럽고, 서서히 옥죄어 들어가는. 점점 숨이 막혀오는.
특히, 우리 사이의 그녀는 전작들과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사이의 '그녀'를 아예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으로 여성들 간의 심리를 우아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누굴까 그게 바로 관전 포인트다. 정신 차려서 읽지 않으면 어느 순간 헷갈리면서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처음부터 정신 차리지 않은 내 탓이지 작가들 탓이 아니다. 이미 곳곳에서 힌트를 주었다. 내가 몰랐을 뿐.
이제 이들 콤비의 책을 확실히 리스트에 넣어 계속 읽어 내려갈 것이다. 여성들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이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얼마나 더욱 잔인하고 아찔할 수 있는지를 이 작가들을 통해서 여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우리 사이의 그녀'와 '나의 친절하고 평범한 친구들'을 추천한다.
* 내가 읽은 책
- 나의 친절하고 평범한 친구들
- 익명의 소녀
- 우리 사이의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