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가방이 고장 났다
딱 맞는 가방을 들고 다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구장창 한 가지 가방만을 고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방을 바꿔서 다니기를 시도했을 때 사원증을 빼놓고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적잖이 곤욕을 치렀다. 신분증을 맡기고 목에 주렁주렁 여러 개를 달고 다녀야 하고. 그런 뒤에는 더욱 확고해져 누가 뭐래도 나에게 가방은 이것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지퍼가 고장 났다. 어떤 시그널도 없이 갑자기 안 됐다. 한번 어긋난 지퍼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고 이제는 진짜 떠나보내야 함을 직감했다. 이미 겉면도...
갑작스러운 고장에 임시로 거의 쓰지 않았던 가방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이 가방은 애착가방보다 품이 넉넉한 형태로 어쩐지 그전에는 내키지 않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딱 각이 잡힌 가방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흐물흐물한 가방은 나에게 절대 호감이 될 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가지고 다니되 다시 딱 네모반듯한 형태의 가방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막상 넉넉한 가방을 들고 다니니 어느 정도 여유가 느껴졌다. 전에는 언제나 가방을 가득 채우고 다녀서 물건을 하나 넣으려고 해도 터질 것 같았는데 품이 넉넉한 가방을 드니 뭔가 달랐다. 하나를 더해도 전혀 빡빡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그전 가방을 고집했을까 언제나 꽉 차서 숨 쉴 틈도 없던 가방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마치 나의 삶 같아서였을까. 언제나 빡빡하게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어야 안심하고 그 외에는 조금도 여유도 없던 나의 삶과 너무 닮아서였을까.
넉넉해진 가방을 들고 다니니 덩달아 나도 좀 여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각이 잡힌 네모 가방이 아니라 놓는 데로 모양이 흐트러지는. 그전에 그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가지고 있는 물건이 그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각이 세워진 가방을 들고 항상 정해진 길로만 다녔던 것 같다. 그게 정답이라고. 다른 어떤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그러나 가방이 바뀌니 뭔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생각이 드는 게 조금은 여유로워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격이 바뀔 때가 되어 그런 건지 진짜 가방 덕분인지 모를 일이지만.
세상도 이리 살련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보다 희미하게. 그러다 보면 또 각이 맞춰진 가방처럼 그런 삶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지만 그때는 또 바꾸면 될 터이다. 뭔가 용감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