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은 어긋난 계획에서 발견된다

아침 출근길의 비밀

by 임진

아침 출근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특히, 여러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녀야 하는지라 1분 1초도 늦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그만큼 생명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줄줄이 꼬이고 그렇게 되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의 실험을 거쳐 최소 이동거리를 알아냈고 무리 없이 잘 다녔다.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 마스크를 잊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문에 비치는 나를 보고서야 내가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할 수 없이 다가오는 역에 내려 부랴부랴 역 사무소로 달려갔다. 지금 내리면 계획이 줄줄이 꼬여 지각할 수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계속 갈 수 없기에 할 수 없었다. 역 사무소로 달려가 이 근방에 마스크 살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냐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쭤보았다. 딱 봐도 마스크가 없으니 직원분께서 자신의 것인데 급해 보이니 주겠다며 한 장을 주셨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꼭 쓰고 다니라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역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 적어도 10분 이상은 지체될 수 있었는데 역무원께 마스크를 받았더니 그나마 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지하철로 달려갔다. 그래도 이미 몇 분은 흐른 터라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집 역의 기준으로는 거의 10분마다 한 대가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자마자. 그렇게 되니 원래 시간보다 몇 분만 늦은 셈이었다. 그리고 편하게 앉아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이건 뭐지?


알고 보니깐 집 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은 몇 대 없어 항상 시간을 맞춰야 했으나 부득이하게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 역에서는 거기서만 출발하는 지하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후 집 역에서 타고 그 역에서 내려 다시 거기서 오는 지하철을 타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라도 앉아서 갈 수 있으니 확실히 덜 피곤했다. 만약 이 마스크 사건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일이었다.


그동안 이 경로를 통해 잘 타고 다녔다. 그러던 중 그날따라 집에서 조금 늦게 나왔다. 집 역에서 타는 지하철을 좀 늦게 타니 기존처럼 다른 역에 내렸다 다시 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서서 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꽉 차서 그런지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스스로 다독거렸지만 너무 답답해서 도착 역 몇 정거장을 앞두고 내려야 했다. 여기에 내리면 다시 또 지하철을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전체 시간이 지연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출근하다 쓰러질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그 역에서 내려 자판기에서 물을 뽑아서 마시니 살 것 같았다. 전 날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에서 사람들로 꽉 막힌 지하철에 두터운 외투와 마스크를 쓰니 답답했던 것이다.


몸이 곧 괜찮아지니 걱정이 앞섰다. 오늘만큼은 영락없는 지각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또다시 바로 지하철이 오는 것이었다. 뭐지? 싶어서 얼른 탔는데 지하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 상태로 목적지 역으로 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출근 시간마다 계속 내리고 탔던 역을 기점으로 3~4분 간격의 지하철은 계속 오고 있었고 그 뒤의 역에서 내가 잠깐 내렸다 다시 탄다고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회사에 도착하니 평소 때 집에서 조금 늦게 나온 도착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또 하나의 발견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답답하다고 느낄 때나 혹은 사람이 너무 많아 숨 쉴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잠깐 내렸다 탈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동안은 한 번 계획이 흐트러지면 다 흐트러진다는 일념으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버텨냈던 것이다. 그런데 불가피한 상황에서 발생한 아침 출근길의 비밀 아닌 비밀을 발견하게 되니 오히려 앞으로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면 계속 정해진 루틴으로 힘들게 다녔을 텐데 뜻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오히려 좀 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 어떤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는 것. 그러니 세웠던 계획에 차질이 있다고 해서 절대 낙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이처럼 계획이 어긋나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동안은 정해진 틀에 맞춰, 해야 할 일들을 잘 처리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다.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들은 나를 더욱 색다른 환경으로 데려다준다는 것. 그러니 계획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정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


앞으로는 여러 새로운 실험을 통해 삶의 범위를 점점 더 넓혀나가겠다. 삶이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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