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무 May 13. 2022

법치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책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입니다>를 통해서 생각해 본 법치주의

행정기관에 몸 담고 있으면서 입법기관에 대한 관심은 늘 있어 왔다. 마치 '창과 방패', '갑과 을' 같은 관계여서 상대기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일부 궁금증은 보좌진의 일상을 그린 책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입니다'를 통해 충족할 수 있었다. 특히, 행정기관, 입법기관 모두에게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국정감사 관련해서 읽을 때는 입법 기관인 국회의 입장이 나와 있어 흥미로웠다.

행정기관의 업무 추진 현황을 일 년에 한 번씩 공식적으로 감사하는 국정감사는 그 전날 저녁부터 국회 보좌관들의 질의를 받아 서면으로 작성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질의서가 보통 전날 밤 10시 정도부터 전달된다는 것. 그러니깐 다음날 오전 10시에 국정감사를 한다고 하면 그 전날 밤 10시 정도부터 국회에서 질의서를 보내온다는 뜻이다. 이는 꼼짝없이 국정감사 전날이면 부처의 전 직원들이 거의 밤샐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며 실제 답변을 작성해야 하는 부서는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

항상 의문인 것은 왜 이렇게 늦게 질의서를 주느냐는 것이었다. 미리 주고 준비하게 하면 될 것을 왜 국회에서는 항상 밤늦게 되어서야 질의서를 주는 것일까? 일종의 군기잡기? 관행인가?

이번에 이 책을 통해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원래 보좌진들의 일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특히 국정감사를 앞두고 질의를 준비하는 일은 그 중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방송국에서 생중계하면서 질의하는 과정들이 국민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을 전문으로 해왔던 행정기관에 비해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질문을 잘 짜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거의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비소로 질의서를 보내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시험 종료 직전까지 머리를 짜내 답을 쓰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질의 과정이 공개되는 만큼 그래서 더 날카롭게 질의해야 하는 만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니 그토록 늦은 시간에 질의서를 주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형태가 여전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로 인해 밤을 새우는 동료들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를 비롯해 실제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보좌관들의 삶을 그려낸 세계를 보니 꽤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장인들은 행정기관이든 입법관이든 똑같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작 이 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법과 관련한 작가의 생각이었다. 실제 국회 현장에서 입법을 추진하는 일에 일조해왔던 작가가 정작 입법 제일주의로 가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한 대목이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법치주의 중심 국가이다. 그러나 국회 보좌관 출신 작가는 모든 것을 법을 제정하는데 최우선 순위로 두고 법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생각하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작가는 실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풀려나거나 재판에서 이기는 이유는 소위 법 잘 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을 당연히 법으로 다 해결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법의 허점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큰돈을 들여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법리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을 누구보다 잘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국민들과 함께 재판에 갈 때 결코 국민들이 이길 수 없는 이유이고 그들이 언제나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는 이유라고 했다. 일견 법이 가장 공정한 잣대가 되어줄 것 같지만 법은 더 아는 사람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모든 것이 법으로 추진되면 역으로 피해 보는 것은 아니러니 하게도 약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니 실제로는 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고, 법 제정 이전에 사회적인 수준에서 의식을 높이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필요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법대로 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등 법 중심으로 사회가 변화하면서 민간영역, 시민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개인의 자율성도 약화되었다.  

흔히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을 보면 시민단체의 활발한 움직임을 볼 수 있고, 개인의 영역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법 의존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가 시민단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일을 하는 단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며 시민들을 대변하기보다는 끼리끼리 문화, 한 자리 해먹는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 만능주의로 가다 보면 앞서 말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 외에도 소위 입법 기관의 힘이 계속 커지게 되어 안 그래도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권한과 영향력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따라서 시민 의식을 키우고 시민단체를 잘 활용해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제언은 그래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라고 느꼈다.

안 그래도 눈살을 지푸리게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그들의 과도한 권한에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런 입법주의 중심 사회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그 권한은 더욱 비대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이 책은 그동안 비교적 비밀처럼 감춰졌던 국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으며, 특히 행정기관의 종사자로서 적 아닌 적, 입법기관의 업무 특성을 통해 그동안의 오해가 다소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화해의 기술서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동안 당연하게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법치주의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법이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규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법 체계를 시대에 따라 완비해오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진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절대성에는 항상 약점이 숨어있듯 절대적인 의존에서 벗어나 계속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했다.

봄이 막 시작될 무렵 이 책을 들었는데 어느덧 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시시각각 변동이 많은 봄 날씨처럼 이 책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도 이 계절과 맞는 책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작가의 이전글 다른 세계를 알아 간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