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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Feb 06. 2022

자유의지냐 운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세계관(자유의지, 운명)에 관한 동서양의 차이

총알을 피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가 최근 4편을 개봉했다. 20여 년 전에 1편이 나온 후 지금 4편이 나온 셈인데 시간의 텀은 있지만 매트릭스를 관통하는 주제는 언제나 인간에 관한 것이었다. 즉,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느냐가 주된 화두로,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거대한 기계인 매트릭스에 종속되어 운명이 결정지어진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빨간 약을, 그냥 지금 이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파란 약을 선택하면 되는데 주인공 네오는 과감하게 빨간약을 선택한다.


인간 자유의지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정해진 운명이 있느냐에 대한 세계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숙제였다. 이는 시대에 따라 어떤 것이 더 강조되기도 하고 어떤 것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자유의지가 강조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발전 유무를 개인의 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활용해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도 하고, 운명론이 강조된 시대에서는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따라서 그렇게 태어났다면 그대로 사는 것이 맞다며 공고히 나눠져 있는 신분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은 흥미롭다. 먼저 동양에서는 우리가 흔히 사주라고 부르는 명리학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8개의 기둥을 가진 글자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것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10년마다 바뀌는 대운에 따라 삶도 변화하는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이나 특징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명리학을 접한 후 흥미로워서 계속해 나의 사주의 글자들을 계속 들여다본 것이 기억이 난다. 자연을 구성하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으로 이루어진 이 오행들의 조합에 따라 누군가는 물의 특성이 누군가는 불의 특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글자가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다. 25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이 명리학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은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냐 인간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학문에서는 기본적으로 변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명리학과 함께 역시 동양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주역은 공자가 책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봤다고 해서 '위편삼절'이라는 사자성어와도 관련 있을 정도로 동양사상의 정수로 칭송받는 책이다. 64개의 궤를 통해 사람의 인생이나 흥망성쇠를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론적 운명론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 역시 변화를 기본으로 한다. 주역에서 '역'이라는 글자 자체가 '변화를 읽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동양의 사상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타고난 특성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고 그 상황에서 어떤 궤를 뽑았다면 그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운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뀌며 그 운을 자신이 어떻게 활용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전한다. 즉,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한편, 뇌과학, 신경물질, 유전자 등을 서양 학문으로 친다고 한다면 이 분야에서는 가혹하리만큼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고 단언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지금 서서히 밝혀지고 뇌의 비밀을 통해서는 이 주장들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뇌의 비밀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이미 태어날 때 기질, 특성 심지어 게으르거나 노력할 수 있는 성향까지 규정되어 있다고 본다. 이는 책 '운명의 과학', '이기적 유전자' 등 다양한 뇌과학, 신경물질, 유전자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게 된다면 그러한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까지 타고난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보수냐 진보냐 등 정치적인 성향조차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니(그래서 바뀌기 쉽지 않은 것이라고) 이 책들을 읽으면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데 노력을 해서 무엇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까지 뇌에서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 변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긴 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3세까지 이 기간에는 부모의 역할에 따라 아이의 지능이나 태도가 변화할 수 있고 개인의 타고난 뇌는 바뀌기 쉽지 않지만 집단지성,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비교적 한계가 있고 인간의 삶 전체적으로 본다면 결정적인 운명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명리학을 동양학문으로 뇌과학을 서양학문으로 나누는 이분법에는 분명 어패가 있다. 하지만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나눠본다면 동양학문은 운명론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되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굳이 따지자면 자유의지를 더욱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있고 서양에서는 자유의지를 선봉 할 것 같지만 결정론적 운명론인 것이다. 사실 이 학문들을 접할 때 반대일 것 같아서 더 흥미로웠다.


우리의 삶이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든 자유의지를 가지고 바꿀 수 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 운명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정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자유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그 노력까지도 정해진 물질, 뇌에서 보내는 신호에 의한 것이라도 말이다.


언제나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어떤 요소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는 언제나 나의 삶의 주된 화두였다. 자유의지가 강조되는 시대에 교육을 받아서 개인의 성취는 개인의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사회적 억압 견디는 시기도 있었고 처음 사주를 접했을 때 혹은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는 이미 타고난 것인데 노력은 해서 무엇하리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팬데믹을 겪으면서는 거대한 매트릭스 같은 바이러스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운명론적 세계관으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어떤 세계관이 정해져 있어 그것이 해답인 양 찾으려 하기보다는 하루하루 변화하는 이 삶을 어떻게 대응하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인지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마침, 임인년의 또 한 번의 새해인 설 명절이다. 새로운 생각들을 하고 다짐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기다. 올해는 변화에 잘 대응하고 견뎌내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을까 한다. 


나에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빨간약을 먹을지 파란 약을 먹을지 선택할 권한이 주어졌다. 나는 굳이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나아가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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