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는 못 본 척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영화 <올빼미>

by 임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좋은 콘텐츠를 보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이 나를 지치게 해도 좋은 영화, 재밌는 책, 좋은 글귀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세계에 빠져들어가 세상사의 시름은 잊고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콘텐츠를 통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풀 실마리도 찾기도 하고 아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그렇다. 바로 보는 것이다. 봐야 알 수 있고 새로운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는 것이 당연했다. 학창 시절 눈이 나빠졌지만 대학교 때 라식수술을 한 이후로는 안경을 쓰지 않은 채 맨 눈으로 무엇이든 보아왔다. 가끔씩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눈이 피로하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 눈을 잠시 감고 있으면 어느새 회복이 된다. 그래서 무엇이든 보지 않은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영화 '올빼미'는 이렇게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제대로 본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살던 경수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환한 낮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깜깜한 밤이 되면 시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병이다. 훌륭한 침술 솜씨를 갖고 있는 경수는 어느 날 궁에서 침술사를 구한다는 소식에 시험에 응시하고 당당히 합격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낮에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지만 밤이 되면 약재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집에 두고 온 어린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 등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중 청나라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인조와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한편, 소현세자의 담당 침술사가 된 경수는 밤이 되면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소현세자에게 들키지만 소현세자는 이를 비밀로 해주면서 자신의 치료를 계속 부탁한다. 경수는 이때 소현세자의 병이 잘 낫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을 올곧게 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밤에도 보이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소경이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세상 일에 눈감고 못 본척 하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고.


한편, 경수의 치료 덕에 몸을 회복하던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소식에 경수는 부랴부랴 어의 이형익과 함께 달려간다. 어두운 밤 촛불이 켜진 방 안에서 경수는 여전히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촛불이 생명을 다해 불빛이 꺼지고 어둠이 온 공간을 감쌀 때 그제야 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소현세자를 독살하는 장면을.


경수는 제대로 본 것일까? 경수가 목격했다는 것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그러면 그동안 못 본척한 것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 치를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경수는 다시 소현세자의 침소로 와서 소현세자를 살리려 하다가 누군가가 오는 바람에 도망치다 부상을 입게 된다. 궁 안에서는 소현세자 침소에서 도망친 자가 범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경수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과 목격한 것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소경이 간헐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못 보는 것과 못 본 척하는 것 그리고 본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등장인물 중에서 경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볼 수 있지만 정작 살인을 목격하는 것은 소경인 경수이고, 진실을 알아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경수는 빛에 의해 강제적으로 선택적 시각을 유지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적으로 보는 것을 정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경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못 본 척하는 것이 좋다던 경수는 과연 그 신념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 선택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 감히 단언해 본다.


다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으로 선택해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모든 것을 올곧게 보려해 쓰러져 간 우리 사회의 소현세자의 죽음을 선택적으로 모른 척한 것은 아닌지.


이제는 본다는 개념을 좀 더 확장시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볼 생각이다. 때로는 사는 것이 지쳐 내 삶을 살아나가는데도 벅차지만 어둠이 찾아올 때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했듯,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 누군가에 의해 세상은 변화하고 조금이라도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짐을 나눠 같이 목도하고 목격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훌륭한 각본, 긴장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한시도 눈을 뗼 수 없게 한다. 실록에 게재된 소현세자의 죽음이라는 한 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주맹증을 앓고 있는 소경이라는 독특한 설정인 주인공을 내세워 철학적 의미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최근에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봄'으로써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제야 진짜 '본다'는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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