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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n 28. 2023

느닷없이 물리학 하기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늘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이길래 이 땅에 왜 하필 이 시기에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고 이 세상은 태초부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가를 늘 궁금해했다.

인생이 평탄치 않았던 까닭에 이러한 물음과 질문은 살아갈수록 더욱 커졌다. 왠지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그 원리를 알 수 있다면 앞날을 예측해, 위험은 피하고 기회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다.


또한 삶은 녹록지 않았으므로 거시적인 세상을 안다면 지금 살고 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하여 철학, 역사 등에 천착하며 개인적인 탐구를 이어왔다. 한 때는 병법서, 전략서 등에 빠져 처세술을 탐닉하기도 하고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의 기원을 찾아보며 세상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오면서도 조금씩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분야를 넘어 명리학 그리고 경제에까지 이르렀다.

종교와 철학이 근대 이전의 세상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였다면 근대 이후로는 경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리학은 세상보다는 인간에게 더욱 집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세상도 사람의 일이기에 세상을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역과 명리학도 접했다. 근데 과연 그게 다일까? 더 없을까?

그러다 우연히도 접한 물리학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됐다. 이름하여 양자역학. 학교 다닐 때 노력으로 수학점수는 올렸어도 끝끝내 포기해야만 했던 그 물리였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싫어했던 물리였지만 양자역학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물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세상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라고 할 정도로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인 건 사실이다.

양자역학에 관한 첫 책으로 하이젠베르크의 '물리와 철학'을 과감하게 선택했는데 너무 무모한 선택이었다. 읽기는 하는데 머릿속은 의문투성이로 가득했다. 끝까지 페이지를 다 넘기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그래서 다음으로 택한 책이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였다. 뜻 모를 '물리와 철학'보다는 훨씬 대중성 있고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으로 알고 보니 물리학 쪽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양자역학은 미시적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기존 과학계의 슈퍼스타였던 뉴턴의 역학이 세계를 사로잡던 이후에 등장했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들은 반발에 부딪히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기존 공고한 세계관이 흔들리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끝끝내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과학이란 모름지기 원인과 결과가 있고 객관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미학인데 양자역학은 그러한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가장 작은 단위를 구성하는 원자가 입자이냐 파동이냐를 놓고 오랜 시간 동안 대립해 왔는데 원자는 입자이자 동시에 파동이기도 한 상보성을 지닌다고 하니 반발이 컸음직하다. 그러나 원리는 설명할 수 없어도 과학적으로는 계산되기에 더 난감했다.

여기에 더해,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는 뉴턴의 결정론과 정반대로 양자역학은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확률로만 제시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측정이 아닌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불확실성의 원리는 과학계에서 쉽게 인정받을 수 없을 만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그 점에 매력을 느꼈다. 측정하는 그 순간에 관계가 규정되고 각 원자의 상호배열에 따라 물질이 구성되었다는 원리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인식을 가능케 했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유동적이며 또 어떻게 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전자가 측정하지 않을 때는 파동으로 움직이다 측정하는 순간 입자가 된다는 것을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알게 됐을 때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것을 측정하였을 때 그것은 나에게로 와서 입자가 되었다.

파동으로 움직이던 전자가 내가 측정하는 행위를 하자 입자로써 모습을 드러냈고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상태로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며 내가 보는 순간 그 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원했던 절대적인 예측은 과학에서도 결코 발견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정해지지 않은 미래이기에, 세상이기에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양자역학은 불교와도 명리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이 책을 보다가 어렵고 복잡한 수식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물리 전공은 커녕 물포자였기에 왜 이제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겼더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층 달라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각은 우주까지 확장되어 이 작은 지구에서의 아웅다웅한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자역학은 요즘 한창 경제 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주요한 매개체이며, 양자암호기술, 양자컴퓨터 등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라고 한다.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세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과학 기술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책 말미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학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대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가진 최선의 대답을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그렇게 그 최선을 가지고 또 한 발짝 전진하며 또 다른 세계를 알아가는 단계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양자역학의 세계가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그렇게 양자역학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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