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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20. 2023

누가 인류에게 핵을 가져다주었나?

느닷없이 영화 보기, 영화 오펜하이머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말이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말이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늘 그 법칙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얘기를 담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아주 아주 많았음을 여실히 증명한 영화였다. 


최근 2~3년 동안 양자역학,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 학창 시절 포기했던 물리가 이렇게 재밌는 건지 뒤늦게 깨달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 아쉬움이 있긴 했다. 그러나 시험을 위한 공부였다면 이렇게 재밌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시세계의 원자는 파동이자 입자인데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입자로서 존재한다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양자역학 자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양자역학의 시대를 연 물리학자들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의 관련 책들도 많이 읽었는데 그중 벤하민 라바투트의 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좀 더 양자역학, 물리학에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전공을 하기도 했고 워낙 좋아했던 터라 192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열풍이 불었다는 것과 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미국 내 메카시즘 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대항해 미국과 소련이 같이 싸우긴 했지만 서로 다른 이념으로 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빠르게 냉전시대를 맞이한 것도 알고 있었다. 


종교, 인문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도 들었었다.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인도인을 넘어 인류에 가르침을 주는 경전이라 알고 있다. 


이 모든 과학, 역사, 철학, 사상 등이 한 영화에 담겼다. 영화 오펜하이머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틈틈이 알고 익혀왔나 싶을 정도로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시대,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를 촘촘하게 연결하는데 정말 보는 내내 미쳤다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기 위해 오펜하이머 지도 아래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모여 핵을 만든다는 맨해튼 프로젝트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과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치영화이고 역사영화이며, 철학과 사상을 내포하며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프로메테우스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담아낸 총체적인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관심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다행히도 원래 관심이 있거나 최근에 관심을 가진 거의 모든 분야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서 3시간 동안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앞부분은 물리학자들과 양자역학에 대한 얘기가 나와 반가웠는데 그동안 영화에서 보아왔던 배우들이 유명한 인물들을 연기해 그 두 가지를 알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수많은 배우들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백미이자 진짜 이야기는 핵 실험 이후부터라고 생각한다. 


연출은 또 어떠한가? 핵폭발 시험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폭발 순간 음소거가 되고, 뒤이어 빡 소리가 들리면서 더 크게 다가왔다. 시각적으로 한 번, 청각적으로 한 번. 두 번으로 이어지는 폭발력에 전율이 일었다. 


핵 실험에 성공한 후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되지만 이전의 공산주의자들과의 친분으로 보안에 접근하는데 문제가 된다. 왜 싸우지 않느냐, 전쟁을 종결시킨 과학자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냐는  측근들의 분노에 대한 대답은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미리 했음을 마지막 장면에서 알려주는데 스스로를 핵에 비유하며 연쇄적으로 이어져 결국 파멸로 갈 것임을 예견했기 때문이었다(이 장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오펜하이머를 함정에 빠뜨리는 스토로스 제독(feat. 아이언맨)이 오해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어쩌면 핵 실험 직후 바가바드 기타의 이 구절을 인용하며 스스로가 프로메테우스가 되었음을 알아차렸으리라. 그래서 그 뒤에 개인적 원한이든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든 자신에 대한 압박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 것 같다. 


로버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파동이자 입자인 양자역학처럼 오펜하이머 자체가 전쟁을 종결시킨 구원자이자 인류에게 핵을 가져다준 파괴자인 셈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핵을 머리에 이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인셉션, 덩케르크 등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로 그의 각본, 연출, 캐스팅 등은 감히 최고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가 핵 실험 성공 이후 단상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의 모습에서 원폭 피해자들의 모습을 환영으로 보면서 말은 독일에 터뜨리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데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말은 다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표정이 어색한데 그 장면이 가히 압권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생각나는 것을 보면 당분간은 이 영화에 빠져 지낼 것 같다. 


인류에게 핵을 누가 가져다주었나. 

그러나 이 질문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누가 인류에게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나. 

오펜하이머는 인류에 핵을 가져온 대가로 이미 충분히 까마귀에게 간을 쪼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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