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름, 예전 기차가 하던 일을 대신해주는 지하철을 타고 김유정 역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한옥의 느낌으로 외관을 멋스럽게 단장한 새로운 역사를 나와 김유정 문학촌과 그 일대를 뜨거운 태양 아래서 천천히 둘러보며, 이 지역은 마치 ‘김유정의, 김유정에 의한, 김유정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주변의 거의 모든 곳이 [봄봄]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김유정 작가로 잘 포장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아울러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의 소설들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김유정 역을 발견하였습니다. 기차가 그 생명을 다하면서 그 역사 (驛舍)마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쌓여 있는 먼지,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풀들 그리고 철로 위의 버려진 기차가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맞아들이는 반가움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그 기차역이 사람의 관심과 손길이 닿지 않게 된 순간, 그러니까 그 쓰임새가 다해 용도가 폐기된 순간 마치 무관심 속에 자란 아이의 마음처럼 곳곳에 그 생채기가 무성하게 자라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채기의 크기만큼 그곳을 통해 간직할 수 있었던 추억의 귀퉁이들이 잘려나가 무언가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마주친 주인 없는 집과 그 집의 녹슨 철제 우편함을 보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은 물론 그 사람과의 모든 추억의 시간들도 함께 없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누군가의 머리를 아름답고 소중하게 만져주었을 미용실이 폐쇄된 모습을 만났을 때나 누군가의 배고픈 점심을 해결해 주었을 식당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아예 봉쇄된 모습을 만났을 때도, 그러니까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용도폐기된 무언가를 볼 때면 이제는 그 누구도 그곳에서의 추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별은 헤어져서 슬픈 것이 아니라 잊혀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별의 반대말은 만남이 아닌 관심일지도 모릅니다.
관심이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보여주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대상이 용도 폐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용도 폐기 되었는지.
혹시 누군가를 용도 폐기하지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