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31. 운명이다

이별도 사랑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by 알케이

볕 좋은 오후, 느릿하게 숙소를 나서 근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벼룩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은 이 시장은 산책을 핑계 삼아 쉬엄쉬엄 돌아보기 괜찮은 규모다. 그 때 마침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예뻐 보여 오랜만에 과일이나 살까 하고 이것저것을 만져보며 들었다 놨다 해본다.


그냥 그럭저럭한 걸 사면 간단할 텐데 그러기가 싫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해도 속은 썪었거나 상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럭저럭할 걸 고르면 실패하기 쉽상이다.


하긴 '운명이다' 싶은 사람도 고르고 나면 운명이 아니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쩌면 그럭저럭한 사람을 골라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과일도 그냥 그럭저럭한 골라 담거나.



가끔 운명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지전능하신 신께서 인류를 만드실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까지 미리 계획해 놓으셨던 걸까.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운명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다가 신이 만들어 놓은 계획된 만남이 아님을 알고 헤어지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사랑에 슬퍼하고 허탈해야 하는 것일까. 미리 만들어진 계획이 아님을 알았기에 택한 선택이면서도.


그런 면에서 보면 이별도 사랑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은 지극히 거짓말이다. 거부된 운명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는가.


사과 몇 개를 골라 봉투에 담고 돈을 내고는 돌아선다. 동양 남자 혼자 과일을 고르고 골라 사가는 게 이상했는지 아니면 신기했는지 돈을 받은 아줌마가 살짝 찡그리듯 윙크를 해준다. 그 사과들이 너의 운명의 사과라고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