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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이 Apr 11. 2022

복수를 꿈꾼다면 (1): 달콤한 인생

커피는 씁니다. 커피를 내리는 향만을 생각하며 그대로 커피를 마시면 뱉어내기 일쑤죠. 그래서 설탕을 넣습니다. 


설탕을 조금 넣고 숟가락으로 살살 저으면 달콤한 맛이 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블랙커피는 마시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달콤하다, 라는 말은 달콤하지 않은 맛을 알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쓰다, 짜다, 맵다와 같은 맛을 모르면 달콤한 맛을 알 수 없으며 그래서 달콤하다는 말을 쓸 수 없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결국 달콤하다는 것은 다른 맛들을 다 알고 났을 때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래야 진정으로 가슴에 와닿는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달콤한 인생이란 달콤하지 않은 인생, 그러니까 쓰고 짜고 매운 인생을 알아야 간신히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영화 ‘달콤한 인생’의 선우 (이병헌)는 인생의 어느 시점이 가장 달콤했을까요? 아니, 맵고 짜고 쓴 인생의 시점은 어디쯤이었을까요?



조직 폭력배의 2인자로서 보스 강 사장 (김영철)으로부터 자신이 서울을 비우는 3일 동안 자신의 내연녀인 희수 (신민아)를 관리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선우.


하지만 희수가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목격하고 ‘없던 일로 할 테니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말 것’이라는 전제를 남기고 일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아챈 강 사장은 왜 즉시 자신에게 전화하지 않았느냐며 ‘배신’이라는 죄목을 씌워 선우를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난 선우는 자신이 몸 바쳐 일했던 강 사장에게 오히려 배신감을 느껴 그를 총으로 죽이고 자기도 결국 죽는다는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에서 선우의 달콤했던 인생의 시간이 언제였는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꽤 비싼 오피스텔에서 돈 걱정 없이 살지만 조직 폭력배에 몸 담고 있었던 시간이 가장 달콤했는지, 보스의 신뢰를 듬뿍 받으며 조직에서 잘 나가는 시간이 달콤했는지 아니면 강 사장에게 복수의 총구를 겨눈 부분이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는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 영화는 무언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칫 지루하려면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말게 하는 그 어떤 힘, 중간에 끊고는 그다음이 궁금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그런 힘.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영화 제목인 ‘달콤한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주인공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그게 아니라면 맵고 쓰고 짠 인생은 어느 부분일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 영화는 어느새 끝에 와 있음을 알았고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막을 내립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달콤하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가진 이 나레이션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을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그렇습니다.


선우의 달콤한 인생은 강 사장이 없는 동안 희수를 감시하며 일말의 짝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3일 동안이었습니다. 


흡사 무엇에도 혹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不惑’이라는 단어처럼 보스의 명령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던 선우는, 몸의 여러 곳에 선명한 칼자국이 말해주듯 맵고 짜고 쓴 인생을 살던 선우는, 단 3일 동안에 한 여자를 향한 짝사랑이라는 흔들리는 감정을 느끼게 됐고 결국 그 3일이라는 시간이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에 달콤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선우가 느낀 그런 달콤함이 강 사장에게는 배신으로 느껴졌고 그런 배신으로 인한 복수심에 강 사장은 선우를 죽이려고 합니다. 


반면 선우는 평생을 충성을 다해 온 강 사장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에 대한 배신감에 복수하고자 강 사장을 죽이게 되죠. 


어쩌면 선우가 느낀 잠깐 동안의 달콤함은 먹어서는 안 되는 이브의 사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달콤함 뒤에 찾아오는 복수라는 엄청난 쓴 맛 때문에.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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