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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이 Feb 04. 2022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2)

카모메 식당

[아멜리에]가 귀엽고 앙증맞은 주인공을 통해 늘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의 숨겨진 외로움을 전달했다면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은 등장인물에게 다양한 외로움의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외로움도 여러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의 어느 골목. 


핀란드를 가보지 않아서 헬싱키인지 다른 중소 도시인지 모르지만 작고 아담한 체구의, 하지만 합기도 (혹은 주짓수)를 수준급으로 하는 일본인 중년 여성 ‘사치에’가 카모메 (갈매기)라는 이름의 식당을 열지만 가게를 인수하고 문을 엽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손님은 없고 거의 매일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핀란드 아줌마 세 명의 시선만이 가게를 채울 뿐입니다.


도대체 왜, 어떻게, 무슨 돈으로 사치에가 핀란드까지 와서 식당을 열었는지, 손님은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가게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어서 그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일본이라는 먼 나라에서 핀란드까지 혈혈단신으로 날아와 식당을 열고 매일 저녁이면 수영과 합기도 (혹은 주짓수) 기본자세를 연습하며 체력을 단련하는 작은 체구의 일본 아줌마 사치에는 막연하게 장사가 잘될 거라는 긍정적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혼자였는지도 모를 그녀는 ‘긍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다 들어온 첫 손님, 토미 힐투넨.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 중급 실력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이 꽃미남 청년은 사치에에게 ‘갓챠맨’이라는 일본 만화의 주제가를 알려달라고 하지만 생각날 듯 생각나지 않는 사치에는 결국 가르쳐 주는 것을 포기하는데요 하지만 카모메 식당의 1호 손님인 그에게 사치에는 평생 커피를 무료로 대접할 생각을 합니다.


사실 토미 힐투넨은 이 영화에서 외로움을 상징하는 첫 번째 인물입니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꽃미남인 그는 언제나, 항상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카모메 식당을 찾아 커피를 마십니다. 친구도 없이. 


어쩌면 그의 외로움은 ‘커피’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미를 만난 그날 오 후 서점에 들른 사치에는 우연히 일본인 여행객 미도리를 만나 생전 처음 보는 그녀에게 느닷없이 갓챠맨 주제가를 물어보고 미도리는 당황하면서도 친절하게 가사를 일일이 적어줍니다. 


사치에가 그녀에게 여행 중이냐고 묻자 미도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여행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 사업차 온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기분 전환을 위해 온 것도 아닌 그냥 느닷없이 핀란드에 온 그녀. 


그냥 어디론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눈 감고 손가락으로 짚은 곳이 핀란드였기 때문에 이 곳으로 온 미도리는 사치에의 제안으로 사치에의 집에서 함께 머물며 가게 일을 돕기로 합니다.


어차피 딱히 어떤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의 외로움은 ‘여행’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먹고사는 삶의 문제에 허덕이지만 한 편으로는 그런 현실에서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사치에가 해준 핀란드에서의 첫 일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해준다는 것, 그 감동은 외로움의 한가운데에 서 있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요.



그리고 얼마 후 여행 중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자신의 짐을 잃어버린 마사코가 카모메 식당에 합류하게 됩니다. 


자신의 짐을 찾을 때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병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느라 삶의 상당 부분을 희생한 그녀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다 우연히 보게 된 핀란드 관련 TV 프로그램을 접하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핀란드로 오게 된 것인데요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여겨진 핀란드에 꼭 오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외로움은 ‘휴식’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존경하는 부모님이지만 장기간 병수발을 들고 나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폐해지는 것이 사실이고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하고 몸을 추스르는 휴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TV에서 본, 걱정과 근심보다는 고요함과 평온함이 가득해 보이는 핀란드로 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도리와 마사코가 핀란드와 핀란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고요하고 평온하며 여유로워 보이던 느낌은 리이사라는 핀란드 여인에 의해 무참히 깨지게 됩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홀연히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던 여인. 


며칠을 가게 앞 유리창에 서서 안을 째려보다가 결국 가게로 들어서서는 술 두 잔을 마시고는 쓰러져 토미가 그녀를 업고,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가 도와 함께 리이사의 집으로 그녀를 실어 나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도리는 세상 어디에나 슬픈 사연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겉으로 평온해 보인다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리이사의 외로움은 ‘가족’인 듯합니다. 


노년이 될 때까지 함께 지내던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혼자 있고 싶다고 떠났으니 갑자기 비어버린 옆자리 얼마나 휑할 것이며 그에 따른 외로움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외로운 사람들의 매개체가 된 카모메 식당은, 천천히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좌석이 꽉 차게 되고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면서 외로움을 잊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커피와 여행과 휴식과 가족이라는 외로움이 긍정을 만나 시나브로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앞서 살펴본 영화들과는 정 반대로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만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타인이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가장 많이 상처를 받게 되는 이유 역시도 타인과의 관계 맺기 때문인데요,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면서도 또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이유들로 상처를 받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법정 스님의 [혼자 사는 사람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라는 말씀처럼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외로운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이 지옥이어서 일 수도 있고, 생텍쥐페리의 얘기처럼 만남이 없어서 일 수도 있으며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나를 의미 있게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해결책은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다양한 외로움이 사치에라는 ‘긍정’을 만나 치유된 것처럼 외로움의 해결책은 다시 사람이 아닐까라고 조심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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