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충치 같아서

by 알케이

무더위를 뚫고 오랜만에 치과엘 갔다.

1년에 한 번씩은 스케일링 받으며 치아를 관리하는데 올해는 어제가 그날이었다.


물론 나도 여타의 다른 사람들처럼 치과에 간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치과가 ‘무서운 곳’ 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편견’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치과는 여전히 긴장되는 곳이다.


그래도 치아를 잘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지.


스케일링을 받기 전 의사 선생님이 이리저리 치아를 살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여기 이렇게 충치가 있고, 여기 이렇게 충치가 있는 거 보이시죠?”


세상에, 사진을 보니 치아 곳곳에 충치가 있었다.


그렇게 관리한다고 무언가를 먹기만 하며 바로 이를 닦아내기를 반복했는데도 충치는 그렇게 조금씩 치아에서 자기만의 둥지를 틀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놀라운 얘기.

“그런데 지금 바로 치료할 정도는 아니에요. 누구나 충치는 있습니다. 저도 있어요.”


치과 전문 의사 선생님도 충치가 있다니. 누구보다 치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치과 의사 선생님은 충치라고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분도 충치가 있다니.


그렇다면 충치라는 것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지 않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제발 입 안에서, 치아에서 자라지 말고 사라지라고 그렇게 닦아내며 지우려 해도 이렇게 자라는 것일까?


“내년에 상태가 더 나빠지면 치료하고 오늘은 스케일링만 하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진찰이 끝나고, 그렇게 스케일링을 하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생각보다 저렴한 금액을 내고, 병원 문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큼해졌다.


마치 충치가 사랑 같아서.


아무리 막으려 해도, 아무리 내 안에서 자라지 않도록 노력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내 안에서 자라 그 어떤 순간에 불쑥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랑이라는 감정 같아서.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 온 뒤 개인 파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충치가 더 자라서 치료하면 개운하겠지? 그 과정은 고통스럽더라도 후련하겠지? 하지만 그 뒤에도 충치는 또 자랄 거야.


사랑에 상처받은 마음도 치료하면 편안해지겠지? 그 과정은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해지겠지? 하지만 그 뒤에도 사랑은 또 자랄 거야.


계속 고통스럽더라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랑은 마치 충치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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