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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이 Mar 03. 2023

[영화.보다.재미있게] 쓰리 빌보드

미국 미주리주의 에빙 (Ebbing)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밀드레드 (프랜시스 맥도만드)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 마을로 진입하는 지방도로에 설치된 버려진 3개의 광고판 (빌보드)을 보고는 바로 광고판 운영자를 찾아가 3개의 광고판을 계약합니다.


광고판 운영자인 웰비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1986년 이후 사용된 적이 없는 광고판이라며 신나 하며 그녀와 계약을 합니다.


이후 밀드레드는 세 개의 광고판에 (차의 진행 방향 순서대로) ‘RAPED WHILE DYING’, ‘AND STILL NO ARREST?’, ‘HOW COME, CHIEF WILLOUGHBY’라는 문구를 순서대로 게재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문구가 적힌 세 개의 광고판이 조용한 마을을 난리통으로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영화 [3 빌보드]의 시작입니다.


로맨스 영화를 제외한 대다수의 영화들은 대립 구조를 가지며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범인 vs 피해자’, ‘범인 vs 경찰’, ‘선 vs 악’처럼 말이죠.


그래야 이야기를 하나의 지점으로 몰고 가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해소시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몰입을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 빌보드의 대립 구조는 어떻게 될까요?



영화의 대립 구조


밀드레드가 남긴 광고 문구의 의미는 순서대로 이렇습니다.


‘강간당하며 죽었다’, ‘그런데 범인이 아직 안 잡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윌러비 서장?’.


밀드레드가 이렇게 충격적인 광고 문구를 마을 사람은 물론 에빙으로 오는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는 광고판에 게재한 이유는 딸 안젤라가 이 광고판 근처의 어디에선가 강간당하며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자식을 가진 부모 모두가 그렇듯이 실망과 분노가 쌓이자 경찰 서장 윌러비를 향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광고를 게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밀드레드 vs 윌러비’의 대립구조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윌러비는 ‘계속 범인을 잡으려고 하고 있으나 증거가 없어서 못 찾고 있다’고 그녀를 다독입니다. 심지어 본인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까지 얘기하며 다독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윌러비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면 이 마을의 모든 남자, 전 미국의 모든 남자의 DNA를 갖고 와서라도 비교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하는 등 빨리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줄 것을 냉정하게 요청합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대립구도가 아니라 일방적인 ‘화풀이’의 구조입니다.



밀드레드가 윌러비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쏟아내는 것이죠.


하지만 그녀의 화풀이는 마을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윌러비는 에빙 (ebbing)이란 마을의 사람들에게나 높은 신임을 받는 경찰 서장이기 때문입니다.



밀드레드 vs 딕슨


그녀의 화풀이에 가장 분노하는 사람은 윌러비의 부하 경찰 딕슨입니다.


그는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더 윌러비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그는 밀드레드를 찾아가 윽박지르기도 하고, 광고판을 판매한 웰비를 찾아가 협박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밀드레드의 행동을 두고만 볼 수 없어 직접 훼방과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립구조가 ‘밀드레드 vs 딕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딕슨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라 엄마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엄마처럼 인종 차별주의자입니다. 그것도 대놓고 인종차별을 합니다.


인종차별이란 기본적으로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유색인종 (주로 흑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차별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약자니까 차별하고, ‘화풀이’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그런 행위를 통해 우월감을 가지는 것이죠.


그래서 윌러비가 암치료라는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새롭게 부임해 온 흑인 경찰서장을 처음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기도 합니다.



딕슨의 이런 인종차별 행위는 경찰이라는 신분을 활용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즉, 법을 집행하는 직업이라는 우월감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죠. 딱히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화풀이 대상으로 인종을 차별하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밀드레드가 자신이 존경하는 윌러비 시장을 광고판을 이용해 공개적으로 모욕하자 그녀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뿐이지 대립 구도는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그의 ‘화풀이’는 윌러비가 자살하자 광고판 운영자인 웰비를 향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됩니다.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화풀이가 인성에 대한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약해 보이는 웰비를 향해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결국 딕슨도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교육에 의해 형성된 미성숙한 인격과 윌러비에 대한 존경심의 삐뚤어진 표현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지 밀드레드와의 대립구도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대립구도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분노와 화해의 영화라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는 대립구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화풀이 영화인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립 구조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분노와 화해의 영화’라고 하는데 전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화해를 상징하는 인물은 윌러비와 광고판 운영자 웰비입니다.


우선 윌러비는 죽기 전 밀드레드와 딕슨에게 각각 장문의 유서를 남깁니다.



밀드레드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은 ‘나도 너무나 범인이 잡고 싶지만 (증거 부족 등) 현실적 여건이 따르지 않아서 미안하다’며 ‘광고판의 광고료를 대신 지급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고판에 자신을 모욕하는 듯한 광고를 게재한 밀드레드였지만, 자신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암환자임을 알면서도 범인을 잡으라고 닦달한 밀드레드였지만, 윌러비는 자살 전 그녀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그녀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 것입니다.


윌러비가 자살하자 평소 그를 존경하던 딕슨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안 그래도 평소에 약자를 향한 차별이 내재되어 있던 그는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특히, 윌러비의 자살 원인이 광고판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광고판 운영자 웰비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모자라 2층에서 밀어 추락시킵니다. 그래서 웰비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하게 되죠.


이후 딕슨이 혼자 경찰서에서 윌러비가 남긴 유언장을 읽던 밤, 밀드레드는 경찰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화재로 인해 경찰서에는 불이 나고 딕슨은 큰 화상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 평소 딕슨이 무시하던 난쟁이 제임스 (피터 딘클리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웰비가 있는 병실을 함께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웰비는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화상 환자가 자신을 2층에서 창문 밖으로 던진 딕슨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화해의 오렌지 주스를 건네줍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중상을 입힌 사람에게 목이 마를까 봐 오렌지 주스를 건넨 웰비는 화해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혹 밀드레드가 제임스 (난쟁이)가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전 남편과 19살 내연녀에게 와인병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나오는 장면을 두고 ‘밀드레드가 남편을 용서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면 용서와 화해로 인해 조용히 와인병을 두고 온 게 아니라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그 표현으로 오히려 아무 말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할말하안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을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화해를 상징하는 윌러비는 죽고, 웰비는 조연이며 밀드레드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분노와 화해의 영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이해 가지 않았던 장면, 둘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장면 두 곳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두 곳이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콘텐츠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이 안 되는 곳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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