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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이 Mar 24. 2023

[인류의 미래 시리즈 ②] 아이,로봇

네이버 영화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들에 너무 실망해서 직접 연재하는 영화 리뷰 콘텐츠입니다.

같은 영화라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쓰고 있습니다.



이 콘텐츠를 읽으시기 전에 이전 콘텐츠를 읽고 오시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편견과 고정관념, 그 사이에서


편견 또는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보통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간편식을 먹어도 배가 부르고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상화되어 사람은 한 없이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일 텐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항상 주장하는 ‘편견과 선입견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의 지속적인 직·간접적인 교류에 의해 형성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얘기한 우리가 그리는 보통의 미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 등을 통해 학습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생각이 비슷비슷한 것이고요.


특히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그런 인식에 기폭제 역할을 한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에 반해 2004년에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로봇이 등장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2035년. 인류는 지능화된 로봇에게 일상의 대부분을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집안 청소, 요리, 살림 등 대부분의 것들을 로봇에게 의지하는데요, 더 정확히 표현하면 ‘1 가구 1 로봇’의 세상이 된 것입니다.


다만 지구 전체가 그런지 아니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도시들만 그런지는 정확히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건의 시작


이 로봇들에게는 세 가지 원칙이 반드시 적용되어 생산됩니다.


원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Law I -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원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Law II -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원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Law III -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이 세 가지 원칙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자 중요한 내용으로 이 원칙을 감안하며 영화를 봐야 영화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일상화된 로봇을 싫어하는 경찰 스프너 (윌 스미스)는 복고를 추구하는데요, 이를테면 영화상 시점으로 괘나 오래전에 유행했고 이제는 아무도 신지 않는 컨버스 운동화를 신는 것들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컨버스는 PPL을 제대로 했네요.


그러던 어느 날, 업그레이드된 신모델 로봇 NS-5가 출시되기 하루 전날, 로봇의 창시자인 래닝 박사는 개발사에서 투신하여 자살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자살로 보인 것이죠.


하지만 래닝 박사와 일면식이 있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스푸너는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자살에 대한 낌새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자살을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좀 생뚱맞은 조합인 래닝 박사와 경찰 스푸너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는 이후에 밝혀집니다.



영화의 대립 구조에 대한 착각


그렇게 수사를 담당한 스푸너는 개발사인 USR의 CEO 랜스 (브루스 그린우드)의 협조 아래 로봇 심리학자 캘빈 (브리짓 모이나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조사합니다.


제가 여기서 제일 의아했던 부분은 ‘로봇 심리학자’라는 직업인데요, 사람이 아닌 로봇이 과연 심리치료나 진단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궁금중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스푸너와 캘빈이 현장 조사를 위해 래닝 박사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연구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USR사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 및 통제하는 인공지능 비키 (VIKI)를 통해 래닝 박사가 자살하기 전 연구소 출입 상황이 녹화된 내용을 보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두 사람은 연구실을 살피던 중 정체불명의 신형 로봇 ‘써니’를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써니를 래닝 박사를 죽인 범인으로 생각하고 체포하려는 스푸너에게 캘빈은 ‘3원칙’ 때문에 그럴 리 없다며 항변하고, 그 사이에 써니는 탈출합니다.


이에 그 써니를 쫓아간 스푸너는 여전히 캘리와 마찰을 빚으며 수사를 하는데 수많은 다른 신형 로봇들 사이에 숨어 있던 써니를 발견한 스푸너를 공격하고는 다시 탈출을 시도합니다.


‘로봇 3원칙’이 무너진 순간인 것이죠.


하지만 탈출과정에서 백업 경찰들에게 체포된 써니는 스푸너에게 심문을 받던 중 이상한 얘기를 합니다.



본인은 ‘써니’라는 이름이 있으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물론 꿈도 꾼다고 말이죠.


이에 스푸너는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로봇이 이름이 있는 데다 감정도 있고 꿈을 꾼다는 것은 래닝 박사가 그렇게 개발을 했다는 얘기인데 도대체 왜 그가 써니를 개발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USR 사에 의해 써는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스푸너는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래닝 박사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철거 로봇이 대기하고 있었고 스푸너의 물음에 로봇은 다음 날 오전 8시에 철거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스푸너가 집안을 살펴보는 사이 누군가에 의해 철거 시간이 당일 오후 8시로 바뀌었으며 철거는 시작됩니다.


주택을 철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너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에 처했던 스푸너는 간신히 탈출해 캘빈의 집으로 찾아가서는 상황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캘빈 박사는 그럴 리 없다, 당신은 그저 로봇이 싫고 로봇이 오류를 범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냐며 답답한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 과정에서 스푸너는 누군가가 래닝 박사의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래닝 박사의 모든 시스템도 USR사의 인공지능 시스템인 비키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추가 조사를 위해 USR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비키에 연결, 래닝 박사의 최근 통화 기록을 요구했지만 비키가 일급기밀이라며 회사 대표인 랜스에게 보고하자 랜스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수많은 NS-5가 실린 대형 버스 두 대가 스푸너에 차량에 접근하더니 로봇들이 튀어나와 스푸너를 공격합니다.


뻥 뚫린 공간이 아닌 터널이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위험에 직면한 스푸너는 힘들게 로봇들을 제거하는 그 과정에서 스푸너의 왼팔이 사람의 팔이 아닌 인공 팔, 즉 로봇의 팔임이 밝혀집니다.


오래전 사고로 어깨부터 왼팔 전체를 잃었던 스푸너에게 래닝 박사가 USR사의 로봇 팔을 이식해 주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의 대립구조는 ‘스푸너 vs USR 사’입니다.


과거 특정 사건 때문에 로봇을 싫어하고 혐오하게 된 스푸너와 로봇 시장의 완전한 독점을 꿈꾸는 USR사의 대립인 것이죠.


그리고 그 대립을 조금 더 강화하기 위해 캘빈이라는 답답한 박사를 투입하여 갈등을 고조화시킵니다.


이 영화에서 캘빈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하며 그것에 반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틀렸다’고 주장하기에 서슴지 않으며 스푸너와 갈등을 만드는데요, 쉽게 얘기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형성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왜 이런 답답한 역할은 꼭 여자가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액션 영화나 스릴러 영화들에서 긴급하고 긴박한 순간에 꼭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답답함을 유발하는 존재는 여자들인데요.



아무래도 이런 류의 영화들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자인 데다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려나 여자 출연자들이 이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제는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한 편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스푸너는 정직을 당합니다.


죽을 위기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로봇들을 제거했지만 그 잔해들이 또 다른 로봇들에 의해 깨끗이 사라지면서 스푸너는 그저 사고를 낸 사람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USR사로 돌아간 써니는 랜스에 의해 폐기처리 대상이 되고 캘빈이 직접 폐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써니는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두 캘빈과 스푸너에게 그림으로 그려 주는데요, 바로 미시간 호수에 있는 구형 로봇 폐기장이었습니다.


정직을 당한 후 로봇 폐기장을 찾아간 스푸너는 그곳에서도 신형 로봇들에게 공격을 당하지만 ‘로봇 3원칙’이 적용된 구형 로봇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곳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왜 신형 로봇 NS-5에는 로봇 3원칙, 그중에서도 제1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는지 궁금해질 뿐입니다.


특히 시카고 도시 일대를 NS-5가 장악하면서 인간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며 인간들과 대치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데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스푸너가 로봇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고는 그에게 동감한 캘빈이 스푸너를 돕기 시작합니다.


과거 스푸너는 졸음운전을 하던 차량과 부딪히며 함께 차에 탄 채로 강 (또는 호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는 사망했지만 아직 어린아이는 살아 있었는데 문제는 두 차 모두 물이 계속 차오르는 상황.


그때 등장한 로봇이 스푸너를 구하는 과정에서 스푸너는 아이를 먼저 구하라고 로봇에게 명령했지만 로봇은 스스로의 판단하에 확률이 낮은 아이를 포기하고 스푸너를 구한 것인데요.



스푸너는 그게 로봇의 한계라며 로봇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것입니다. 확률이 단 1%였다고 해도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하는데 로봇은 그게 안 된다는 것이죠.


운전을 하다 보면 최근엔 자동차 뒷유리창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이가 타고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라’라는 느낌의 스티커를 붙인 차량도 있는데요, 그런 차들을 볼 때마 느끼는 점은 ‘그래서 어쩌라고’입니다.


‘아이가 타고 있다’라는 것을 스티커를 통해 남들에게 고지하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 그 차량이 사고가 났을 때 아이를 먼저 구해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 확률이 엇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아이보다는 성인을 먼저 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긴박한 순간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식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생명이 나의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아이가 타고 있다는 고지를 함으로써 아이를 먼저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스티커의 의미이지 ‘내 차에 아이가 있으니 너는 알아서 조심해서 운전해라’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푸너는 그래서 로봇을 혐오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간 어린 소녀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로봇에 의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소녀가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죠. 분명히 로봇에게 소녀를 먼저 구하라고 했는데도 말이죠.



진짜 대립 구조의 등장



스푸너의 얘기를 듣고 공감한 캘빈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써니를 폐기하는 척하다가 다른 로봇과 바꿔치기해서 살려두었고, 로봇이 단체로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USR사로 온 스푸너와 함께 원인을 찾아 없애는데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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