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rogate: 대용물, 대리인
미국 영화들을 보면 SF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그린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 수준의 지능과 감성을 가진 로봇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가 일상화된다는 설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로봇들 때문에 인류의 미래가 암울해진다는 것인데요,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렇고 [아이, 로봇], [이글 아이] 등이 대표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늘 있었는데요,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그릴까라는 것입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제대로만 통제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해지고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여기, 이런 저의 궁금증에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대답의 실마리를 준 영화가 있으니 바로 [써로게이트]입니다.
이 영화에서 미래의 인류는 사람들이 집에 있고 써로게이트라는 로봇이 대신 외부 활동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나는 집에서 푹 쉬고 내 분신이 대신 일하러 회사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가끔 하곤 하는데, 바로 그런 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특수 제작된 의자에 누워 독특한 형태의 헤드기어를 착용하면 써로게이트와 본인 (영화 상에서는 운영자로 불림)의 신경이 연결되어 운영자 본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요, 그냥 또 다른 운영자가 되는 것입니다.
분신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직장도, 휴가도, 기타 대부분의 생활도 운영자 본인은 집에서 누워만 있으면 되고 모든 것을 써로게이트가 대신합니다.
그리고 써로게이트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들은 다시 운영자가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편해진 생활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간다운 생활,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하며 가질 수 있는 성취감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과연 이런 생활이 만족스러울까요?
써로게이트는 켄트 (제임스 크롬웰) 박사가 VSI라는 회사에서 직접 진두지휘해서 개발했으나 켄트는 나중에 회사로부터 축출을 당합니다.
정확한 축출의 이유는 나오진 않지만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원래 켄트 박사가 써로 게이트를 개발한 이유는 장애인의 뇌파로 써로게이트를 조종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써로게이트가 가진 편리함 때문에 일반인들까지 써로게이트를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인간은 집에만 있고 써로게이트를 통해 모든 생활을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따라서 박사는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 써로게이트를 활용한 사업에 반대하다가 회사로부터 쫓겨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활용하거나 사용하게 되면 항상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현실에서도 무언가가 우리 사회를 독점하기 시작하면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기듯, 영화에서도 써로게이트의 일상화에 반대하는 집단이 생겼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문제가 생긴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예언자’ (빙 레임스)를 중심으로 시위를 주도하다 써로게이트의 출입을 금지하고 인간만 출입, 거주할 수 있는 '드레드'라는 구역을 만들어 생활하며, 그 지역은 법률에 의해 보장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테면 살인 (?) 사건이 발생합니다.
야심한 밤 클럽의 뒷골목에서 남녀 한 쌍의 써로게이트가 누군가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는 강력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써로게이트는 웬만한 물리적인 충격에는 절대 파괴되지 않으며, 설령 파괴된다 하더라도 운영자에게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구조였는데 이 사건에서는 써로게이트의 내부칩이 파괴된 것은 물론 접속 중이던 사용자의 뇌가 녹아내려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게다가 희생자 중 한 명은 써로게이트의 창시자인 캔트 박사의 아들인 재리드였습니다.
그래서 FBI 요원인 톰 (브루스 윌리스)과 제니퍼 (라마 미첼)는 수사를 시작하며 은둔 중인 써로게이트 개발자 켄트 박사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대화 도중 '재리드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를 묻자, 캔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아들의 죽음은 내 탓'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대화 과정에서 톰 역시 자신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덧붙이자면 톰이 아들을 잃은 후 그의 아내 매기 (로자먼드 파이크)는 그 슬픔에 수년간 우울증 약 및 다양한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대신에 써로게이트를 통해 네일 샵에서 일하는 등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써 유대감과 부부 생활을 원하는 톰과 작은 마찰이 지속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꽤 의미가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생활을 영위합니다.
그래서 사교 모임이라는 것도 있고, 동호회도 있으며, 친목 모임 같은 것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것 역시 인간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매기처럼 억지로 감정과 상처 등을 숨겨야 하기도 하고요.
결국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지만 그런 남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인간들이 써로게이트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는 상관없이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세상이 이 영화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생활이 바람직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