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쿨 웨잇리스트를 기다리며 썼던 나의 글들, 네이버에 묻히다.
지난 6월,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미 로스쿨 합격 발표는 받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웨잇리스트에 걸린 학교들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불안했다.
미국 로스쿨에 가는 것이 정말 맞는지,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합격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렸다. 합격 여부만이 내 가냘픈 자존감을 지탱해 주었고, 내 모든 미래를 좌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안은 점점 나를 삼켰다.
나는 너무나도 웨잇리스트에 붙고 싶었다. 합격 자체보다도, 그 불확실한 변수를 내 인생에서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두 달 뒤 내가 어느 도시에 살게 될지, 애인과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될지조차 계획할 수 없는 '림보' 상태는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당일치기로 6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가로질러 학교를 방문했다. 호텔은 잡지 않고, 비행기에서 눈을 붙인 채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배낭 하나만 메고 캠퍼스를 돌아다니고, 입학사정관을 만났다. 낯선 도시의 날씨를 느낄 겨를도 없이, 스타벅스에 앉아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역대 최다 인원이 로스쿨에 지원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불안은 더 커졌다.
하지만 불안의 원인은 늘 같았기에 애인에게 털어놓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로스쿨 입시에 대해 잘 모르는 애인도 처음에는 귀 기울여주었지만,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자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곳을 단순히 감정 배출구로 쓰기보다는, 내가 미국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며 알게 된 정보,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단절감'이었기 때문이다.
서른 넘은 내 또래 친구들은 이미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이나 육아라는 다른 삶의 챕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지인들은 대부분 미국 학부 출신이라, 고민의 결이 나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혼자 LSAT을 준비했고, 주변에 미국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다. 몇 년 간 혼자서 정보를 찾아 헤매고 고민했던 시간이 어쩜 외로웠던 것 같다. 매일 이메일을 새로고침하며 웨잇리스트 소식을 기다리는 것도 지치기만 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웨잇리스트 결과 외에 집착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가 열리자, 나는 매일 몇 시간씩 글을 썼다. 새로운 글감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런데 글을 30개쯤 올렸을까, 블로그가 정지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비정상적인 활동이 감지되어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 이용이 영구 제한되었다"는 메시지만 떴다. 문제의 글은 미국 로스쿨 '스페셜티 랭킹'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혀 유해하지도, 비정상적이지도 않은 글이었다.
네이버 측에 문의하면 간단히 풀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복잡했다.
나는 개인 프라이버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인터넷에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잘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사이트에 가입할 때 가짜 이름과 생일을 입력하고는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블로그를 복구하려면 가입 당시의 정보와 일치하는 신분증을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신분증은 당연히 없었고, 그 결과 로그인조차 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문의글도 남길 수 없었다.
물론 네이버가 애초에 허위 정보로는 가입이 안 되게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내 잘못이었다. 몇 달간 나를 위로해 주던 블로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몇몇 글은 브런치에 올려놨지만, 네이버에만 있었던 수많은 글과 초안이 전부 날아갔다. 적어도 내가 쓴 글들만이라도 돌려받고 싶었지만 네이버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정말 속상했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불찰이기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물론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브런치는 왠지 너무 본격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사적인 기록을 편히 쓰고자 네이버 블로그를 더 사용했던 것 같다.)
다시 블로그, 아니 브런치를 시작하며,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
너무 완벽한 순서로 글을 올리려 하지 말자. 내 안의 완벽주의자가 취미 생활에까지 간섭할 때가 있다. 그냥 취미로, 재미로 쓰는 글인데, 글의 순서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괜히 고민이 많았다. 이제는 독자의 입장보다는 나라는 작가의 입장에서, 그때그때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쓴 글을 바로 올리자.
또한 글을 반드시 저장하자. 하나의 플랫폼이 막히더라도, 다른 곳에서 내 글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일종의 클라우드나 백업 개념으로.
그리고 너무 매일 쓰려고 하지 말자.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만 블로그 글을 쓰기로 하자. 그 이상은 과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취미생활이다. 일처럼 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