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졸업해도 미국에서 일할 수 없다
이 블로그는 한국어로 작성되었으며, 한국 블로그 플랫폼인 브런치에 연재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한국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미국 로스쿨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비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LSAT 점수나 에세이 등 '입학' 단계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로스쿨을 진학하는 이유는 단순히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졸업 후 커리어의 방향과 체류 자격을 결정짓는 비자 문제는 정말정말 중요한 요소다.
로스쿨은 단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충족시키는 과정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비자가 발급되거나, 미국에 남아 변호사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스쿨과 비자 취득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로스쿨 입학 전에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비자 문제를 조금 더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로,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본 글 역시 JD 입학 과정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 로스쿨에 입학하면 기본적으로 F-1 학생비자를 받게 된다.
이 비자는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지만, 정식 취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학기 중에는 도서관 등 교내 시설에서 Research Assisstant로 근무할 수 있고, 여름에는 학교의 승인을 받은 CPT (Curricular Practical Training)을 통해 인턴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업의 연장선상에서 허용된 제한적 근무일뿐, 정식 취업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F-1 비자가 없어지는 졸업 이후다.
법학(JD)은 STEM 전공이나 MBA와는 달리, 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졸업 후 실습 비자)가 단 1년만 주어진다. 즉,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2개월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1년이지만, 실제로는 5월 졸업 후 2~3개월간의 Bar Exam 준비 기간이 포함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OPT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약 8~9개월뿐이다.
따라서 이 OPT 1년이 끝나기 전에 비자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OPT 이후 JD 취득자가 미국에서 근무할 수 있는 방법은 H1-B 취업비자 또는 영주권 취득 두 가지뿐이다.
H1-B는 미국 내에서 전문직(professional occupation)으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대표적인 취업 비자다.
로펌이든, 테크 기업이든, 회계법인이든, 이 비자가 없으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다.
문제는 이 비자가 추첨제(lottery)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어도, 추첨에서 떨어지면 미국에서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즉, 실력보다 '운'이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인 셈이다.
매년 미국 정부는 약 85,000개의 H1-B 정원 (quota)를 연다. 하지만 실제 신청자는 그 몇 배에 달하며, 수십만 명이 몰린다. 2025 회계연도에는 약 48만 건이 접수되어, 당첨 확률은 약 28%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경쟁은 변호사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다. H1-B는 엔지니어, 회계사, 연구원, 마케터 등 모든 전문직 지원자가 같은 추첨 풀(lottery pool)에서 경쟁한다.
또한 H1-B 비자는 회사(고용주)의 스폰서십이 있어야 유지된다. 즉, 회사를 떠나면 미국에서의 비자도 유지할 수가 없다.
이 말은 곧, (1) 마음대로 회사를 옮기기 어렵고 (2) 휴직이나 커리어 공백을 갖기 힘들며 (3) 회사를 떠난 뒤 60일 안에 새로운 스폰서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의 커리어 선택을 제한하고, 비자를 통해 '체류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OPT로 근무하는 1년 안에 이 H1-B를 받지 못하면, 미국에서의 커리어는 불확실해진다. 추첨에서 떨어지는 순간, 미국 내 합법적 근무 자격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H1-B 비자는 최대 6년 (3년 + 연장 3년)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그 이후에도 미국에 남으려면 결국 영주권(green card)을 취득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H1-B를 신청하면서 동시에 영주권 절차를 병행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길고, 복잡하며, 무엇보다도 고용주에 의존적이다.
미국의 영주권은 대부분 취업 기반 (employment-based)으로 발급된다.
즉, 개인이 독립적으로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가 대신 신청해 주는 형태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정부에 해당 직무를 수행할 미국 내 적격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 절차를 PERM (노동 인증, Labor Certification)이라고 하며, 실제 채용 공고를 내고 지원자 검토 기록을 남기는 등 행정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심사 기간만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PERM이 승인되면, 그다음 단계로 이민 청원(I-140)과 신분 조정 (I-485) 단계가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 국적에 따라 수년간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영주권 신청 과정이 고용주의 스폰서십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지원을 중단하거나 퇴사하게 되면, 그동안 진행된 절차는 모두 중단되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취득하기 어려운 H1-B나 영주권도, 모든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JD 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진로는 다음과 같다: (1) 로펌 (Law Firm) (2) 정부기관 (Federal & State Government) (3) 사법부 클럭십 (Judicial Clerkship) (4) 공공기관 및 비영리단체 (Public Interest, NGO) 등의 커리어를 갖게 된다.
(기업 인하우스 (In-house)는 대부분 경력직 중심이라, 신입 JD 졸업자가 바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非)미국인에게 현실적으로 허용되는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정부기관과 사법부는 시민권자만 지원할 수 있으며, 중소형 로펌이나, 공공기관, 비영리단체의 경우에는 비자 스폰서십을 진행할 인프라나 여력이 없어 외국인 고용이 쉽지 않다.
결국 외국인에게 합법적인 취업 비자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Big Law (대형 로펌)이 거의 유일하다.
국제학생에게 Big Law는 단순히 연봉 높은 직장이 아니다. 비자를 통해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따라서 Big Law에 들어가느냐는 단순한 취업 경쟁이 아니라, 미국에 남을 수 있느냐, 아니면 귀국해야 하느냐를 결정짓는다.
즉, 비자가 없는 상태로 미국 로스쿨 진학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Big Law 취업을 목표로 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Big Law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부터 또 다른 불안이 시작된다. H1-B는 고용주의 스폰서십이 있어야만 유지되고, 영주권 또한 회사의 지원 아래에서만 진행된다.
즉, 비자를 보장받는 대신, 커리어의 자유를 잃는 구조다. 회사를 옮기거나 휴직을 선택하기 어렵고, 스폰서십이 끊기는 순간 체류 자격도 함께 사라진다.
더구나 Big Law는 극도의 실적 경쟁과 긴 근무 시간으로 악명 높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평균 3~5년 정도 근무한 뒤 번아웃이나 워라밸 문제로 회사를 떠난다. 하지만 외국인 변호사의 경우, 비자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다. 결국 남고 싶어서가 아니라, 떠날 수 없어서 남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근 미국 Big Law는 국제학생 채용에 점점 더 신중해지고 있다.
지원서에 Do you require visa sponsorship?이라는 문항을 명시하는 곳이 늘었고, 아예 비자 스폰서가 필요한 경우 지원 불가라고 밝히는 로펌도 적지 않다. (이는 단지 로펌 채용에만 국한된 변화가 아니라, 미국 전반의 채용 시장이 외국인 스폰서십을 점점 더 꺼리는 흐름을 보여준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영어가 제2외국어인 지원자, 그리고 번거롭게 비자를 스폰서해야 하는 외국인 지원자를 굳이 채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회사는 행정적 부담이 크고, 정책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안고 가야 한다.
로펌이 수천 달러를 들여 비자를 스폰서 하더라도, H1-B는 추첨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떨어지는 순간 모든 투자가 무의미해진다. 반면, 미국인을 고용하면 이런 리스크를 전혀 감수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H1-B 신청자에게 최대 1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비자 정책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려는 기업들에게 또 다른 리스크로 작용한다.
결국 로펌 입장에서 국제 학생 고용은 단순히 추첨 결과에 의존하는 불확실한 계약일뿐만 아니라, 비자 신청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행정적 부담이 큰 절차이기도 하다. 로펌은 이 모든 리스크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학교 입장에서 보자면, 이 문제는 또 다른 형태의 딜레마다.
로스쿨 랭킹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에는 LSAT, GPA, 그리고 취업률이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제학생은 구조적으로 이 취업률을 높이기 어렵다.
비자 문제로 인해 지원 가능한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다. 더군다나 최근 Big Law조차 국제학생 채용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국제학생 선발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학업 성취를 갖춘 지원자라면, 비자 리스크가 없는 미국 학생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학교는 취업 가능성이 더 높은 학생을 선발해야 로스쿨 랭킹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학생은 비자 문제뿐 아니라, 언어적 장벽, 네트워크의 한계, 그리고 인터뷰 문화의 차이 등 여러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다.
국제학생을 많이 선별하는 것은 결국 로스쿨의 공식 통계, 즉 취업률 지표와 랭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입시 과정에서 국제학생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차별이라기보다, 학교가 감수해야 하는 현실적 리스크 관리의 결과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면 당연히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비자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제학생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대한 장학금을 받아 초기 비용을 줄일 것
미국 로스쿨 학비는 매우 비싸다. 장학금 없이 3년을 다니면 약 3억 원의 빚이 생긴다.
3년이라는 시간 자체도 큰 투자이기 때문에, 금전적 부담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전략이다.
둘째, 가능한 한 높은 학교를 목표로 할 것
상위권 로스쿨일수록 Big Law 진출 확률이 높고, 비자 스폰서 가능성이 큰 고용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요즘은 미국인조차 하위권 로스쿨을 졸업하면 취업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자가 없는 한국인이라면, Big Law 취업률이 높고, 네임밸류가 높은 로스쿨을 목표로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무조건 T14 로스쿨일 필요는 없다. 물론 T14이면 좋겠지만, T14이 아니더라도, Big Law로 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들이 있다. 비자 취득이 목표라면, Big Law 취업률 위주로 진학할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런 학교들은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과 네임밸류를 가진 곳들이다. 따라서 설령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학위와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학교의 이름값은 해외 오피스나 국제기구, 혹은 귀국 후의 커리어에서도 충분한 자산이 된다.
즉, 좋은 학교일수록 비자 가능성과 커리어 확률이 함께 높아지게 된다.
셋째, 비자를 받지 못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반드시 점검할 것
너무 낙관적인 전제를 세우기보다, 만약 미국에서 취업하지 못한다면, 미국 로스쿨 진학이 여전히 나에게 의미 있는 투자일지를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3억 원의 빚을 내고 JD 학위를 취득했지만, 미국에서 대형로펌에 취업하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그 선택이 여전히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 내 커리어의 다음 단계에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을지를 미리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