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미국 로스쿨 T14, 왜 모두가 집착하는가

T14, 단순한 랭킹이 아니다

by 리짓

한국에 서연고(SKY)가 있다면, 미국 로스쿨계에는 T14이 있다. 미국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가장 자주 듣고, 가장 집착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이 T14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T14는 정확히 무엇이며,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이 글에서는 T14의 개념,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어떻게 구조적 안정성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1. T14의 정의


T14은 Top Law Schools의 약자다.

말 그대로 미국 내 상위 14개의 로스쿨을 가리키지만, 흔히 말하는 T14은 매년 U.S. News & World Report가 발표하는 '그 해의 상위 14개의 학교'를 뜻하지 않는다.


T14은 매해 바뀌는 순위가 아니라, 오랜 기간 상위권 자리를 유지해 온 전통적인 집단을 의미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최상위권을 유지해온 다음 14개 학교가 그 범주에 속한다: Berkeley, UChicago, Columbia, Cornell, Duke, Georgetown, Harvard, UMichigan, Northwestern, NYU, UPenn, Stanford, UVA, Yale


즉, T14는 매년 새롭게 선정되는 톱14가 아니라, 어느 정도 굳어진 상징적인 집단명이다.


예를 들어 2025년 랭킹에서 UCLA가 12위에 올랐더라도, UCLA를 T14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chart.png US News Law School Ranking 2025

왜나하면 T14라는 개념은 단순한 숫자나 해마다 바뀌는 숫자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법조계와 학계가 함께 형성한 인식의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누가 몇 위인지 매년 확인하지 않아도, T14라는 말만 들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14개의 학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2. T14, 그리고 Big Law 취업률


로스쿨은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이다.

많은 학생이 정의, 공익, 사명감으로 로스쿨을 꿈꾸지만, 동시에 미국 로스쿨은 3년간 약 3억 원의 비용이 드는 거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단순한 학비만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투자 규모는 훨씬 크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로스쿨 = 고소득 직업,' 아니 '로스쿨 = 직업'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JD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일자리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투자를 가장 확실히 회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Big Law다.


2025년 기준 Cravath Scale에 따르면, Big Law의 초봉은 $225,000, 보너스까지 포함하면 연봉이 3억 원을 넘는다. 이는 단순히 높은 연봉이 아니라, 3년간의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조적 통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문이 모든 학교에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미시간 주에 위치한 두 로스쿨을 비교해보자.

Cooley Law School 졸업생 중 501명 이상 규모의 로펌에 진출한 사람은 1명, 251명 이상 규모의 로펌까지 포함해도 단 3명 (약 2.4%)뿐이었다.

Screenshot 2025-10-30 at 6.17.30 AM.png Cooley Law School ABA Employment Summary Report for 2024 Graduates

반면, T14 중 하나인 University of Michigan Law는 501명 이상 로펌 진출자가 162명, 251~500명 규모까지 포함하면 약 180명, 여기에 연방 법원 서기 (Federal Clerkship) 33명을 더하면 졸업생의 60% 이상이 전국 최상위 일자리에 진출했다.

Screenshot 2025-10-30 at 6.19.00 AM.png University of Michigan Law ABA Employment Summary Report for 2024 Graduates


같은 주, 같은 JD 학위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실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학교의 순위가 만들어내는 구조의 문제다.




어쩜 미국 로스쿨은 입학보다 졸업 후가 더 치열하다.


입학과 동시에 GPA 소수점 단위에 집착하던 전국의 우등생들이 한 강의실에 모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경쟁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1학년 (1L) 성적이 초기 커리어를 좌우한다.

1L 여름 인턴십이 2L 여름 인턴십으로, 그리고 졸업 후 풀타임 오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마다 경쟁의 구조가 다르다.

하위권 로스쿨의 경우, Big Law 진출은 상위 10% 미만 소수의 학생들만의 영역이다. 대부분 Big Law 인터뷰 기회조차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하위권 로스쿨이라고 해서 경쟁이 덜하거나 성적을 받기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학교든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각자의 학부에서 가장 잘하던 학생들이 한데 모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조금 삐끗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사라진다면, 그건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반면 T14 로스쿨은 평균적으로 60~70%가 Big Law로 진출한다. 즉, 하위 30~40%만 제외하면, 현실적인 기회가 주어진다.


T14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적어도 승산이 있는 경쟁이다. 그 외의 학교에서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피 튀기게 경쟁해야 한다. 둘 다 힘들지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확률과 경쟁의 강도의 차이가 크다.




3. 실패해도 덜 흔들리는 구조


T14의 진짜 가치는 단지 높은 Big Law 진출률에만 있지 않다. 첫 연봉이나 첫 회사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건, 실패하더라도 커리어가 덜 흔들리는 구조적 안정성이다.

이 안정성은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1) 전국 단위의 이동성 (2) 네트워크와 교수진 (3) 공익 진로의 경제적 완충장치 (4) 글로벌 확장성.


(1) 전국 단위의 이동성

미국의 로스쿨 시장은 기본적으로 지역 기반으로 움직인다.

대부분의 졸업생은 자신이 공부한 도시나 주()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로펌 채용과 법률 네트워크도 지역 단위로 제한된다.


하지만 T14은 예외적이다.

이들 학교는 사실상 national school로 기능한다. 졸업생들이 특정 지역에 묶이지 않고, 전국 어디서든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UC Berkeley Law와 UCSF Law (옛 Hastings)를 비교해보자.

T14 중 하나인 Berkeley Law 졸업생의 약 60%는 캘리포니아에 남지만, 나머지는 뉴욕(14.5%), 워싱턴 D.C. (6.4%) 그리고 약 19%는 기타 주와 해외 등 전국 주요 로펌 시장으로 진출한다.

Screenshot 2025-10-30 at 6.34.31 AM.png University of California - Berkeley Law School ABA Employment Summary Report for 2024 Graduates

반면, UCSF Law 졸업생의 약 85~90%가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타 지역으로 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비(非)T14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지역에 커리어가 고착된다.

Screenshot 2025-10-30 at 6.35.52 AM.png University of California - SF Law School ABA Employment Summary Report for 2024 Graduates

즉, 학교의 위치가 곧 커리어의 위치를 결정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T14의 힘이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 파워가 아니라, T14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리크루팅 시스템(OCI)과 이미 확립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 덕분이다.


결국, T14은 로펌이 찾아오는 학교, 그 외의 로스쿨은 학생이 로펌을 찾아가야 하는 학교다.



(2) 네트워크와 교수진

T14에 간다고 해서 배우는 커리큘럼이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로스쿨은 ABA (미국변호사협회) 인가 (accredited)를 받은 학교이기 때문에, 로스쿨 1학년 (1L) 과정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과 연결의 깊이가 다르다.

T14 교수진은 학계, 정계, 로펌 등 각 분야에서 이름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추천 한 마디, 혹은 동문 네트워크의 이메일 하나가 실제 면접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취업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건 '학교가 챙겨준다'기보다, 학교의 이름이 시장 안에서 신뢰로 작동하는 구조다.



(3) 공익 진로의 경제적 완충장치

투자 대비 수익(ROI)만 놓고 보면 Big Law가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돈과 Big Law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정부기관, 공익단체, NGO 등의 진로를 택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대부분 Big Law만큼의 고소득 직업이 아니다. 대체로 미국 평균 연봉 수준이거나, 그보다 낮은 경우도 많다.


이런 길을 선택한 졸업생에게 가장 큰 부담은 학자금이다.


이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로스쿨이 LRAP (Loan Repayment Assisstance Program) 제도를 운영한다.


다만 학교마다 지원 범위와 금액의 차이가 크다.

T14이나 상위권 학교들은 상대적으로 폭넓고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지만, 중하위권 로스쿨은 지원 한도가 낮거나 일정 소득 이상이면 아예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NYU Law는 연소득 11만 달러 이하 졸업생의 학자금 상환을 전액 지원해준다.

Screenshot 2025-10-30 at 6.40.34 AM.png NYU Law LRAP

반면, Brooklyn Law는 연소득 6만 5천 달러 이하, 연 최대 7천 달러, 5년까지만 지원된다.

Screenshot 2025-10-30 at 6.41.08 AM.png Brooklyn Law LRAP

즉, 연소득이 7만 달러인 같은 일을 할 때, NYU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학자금이 면제되지만, Brooklyn Law를 졸업하면 지원이 아예 없게 되는 것이다.


즉, 같은 '공익 진로'라도, 학교에 따라 희생의 크기가 다르다.

T14 졸업생은 장학금 없이 학교를 다녔더라도,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의 직업을 택할 때 부담이 훨씬 적다. 즉, 경제적 이유로 원하는 길, 이상을 포기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것이다.



(4) 글로벌 확장성

미국 로스쿨 진학을 고민하는 국제 학생이라면 누구나 비자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받고 졸업하더라도, 비자 추첨에서 탈락하면 미국 내에서 일할 수가 없다. 이 문제는 언제나 존재하며, 결코 개인의 노력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이름값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다스릴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비자 문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할 때, T14 출신 JD라는 타이틀은 즉시 통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작동한다.


T14 졸업생은 한국의 대형 로펌, 외국계 기업 법무팀, 혹은 국제기구와 같은 글로벌 조직에서 비교적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비(非)T14 로스쿨 출신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인지도와 네트워크가 약한 만큼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T14은 단지 좋은 첫 직장을 보장하는 학교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커리어를 지탱하는 안전장치이자, 하나의 보험이다.




4. T14 or Bust?


T14 or bust, T14 아니면 놉! 미국 로스쿨 지원자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법조계처럼 폐쇄적이고 경쟁적인 시장에서, T14은 누군가에게 단순한 명문대 혹은 성공의 상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허영을 채우는 표창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 역시 그랬다.

T14 중에서도 조금 더 랭킹이 높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허영이나 랭킹에 대한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현실적으로 보면, T14은 투자 리스크가 가장 낮은 구조, 즉, 안정성이 검증된 선택지다.

Big Law 진출률, 네트워크, 이동성, LRAP 등 모든 지표에서 T14은 여전히 예외적 안정성을 가진다. 결국 T14이라는 이름은 자존심의 표식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물론, T14이 절대적인 성공의 기준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상징이자, 그 정도 수준의 상위권 로스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전통적인 T14 학교들은 전국적으로 통하는 이름값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들지 않더라도 상위권 학교라면 충분히 비슷한 구조적 결과를 낼 수 있다. 또한 Big Law 진출만 놓고 보면, 전국 단위가 아닌 특정 지역에서 T14 못지않게 성과를 내는 학교들도 있다.


따라서 T14 or bust라는 말은 절반만 맞다.

만약 그것이 단순히 T14이 아니면 진학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라면, 틀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T14 수준의 구조적 안정성을 가진 학교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 말은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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