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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병치레

by 고래씌

우리 가족은 잔병치레가 많다.

아프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잘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일이다.

그렇지만 자주, 꽤 아픈 일이 잦다.


그 중 최고봉은 아빠다.

우리 아빠는 손가락에 피만 나도 밴드를 왕창 붙이신다.

그리고 콧물이 나고 조금만 목이 따가워도 무조건 병원에 가셔야하는 분이다.

그 덕에 심장병을 찾아내고, 관리할 수 있게 된 행운도 있긴 하다.


언니와 나 역시 잔병치레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다닐 때에도 개근상을 탈 수 있는 그런 성실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거기에 각종 잔병치레로 조퇴도 하고(그렇지만 결석은 안했다. ‘아파도 일단 학교 가서 아파!’ 하는 엄마의 교육관 때문이다.), 깁스를 한 채로 엄마에게 업혀 학교에 등교를 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나는 아빠 못지않게 유난스러웠는데 당시 유행하던 유행성 각결막염 일명 아폴로 눈병에 걸려 3주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신종플루에 걸려 대학원 수업에 나가지 못해 혼자 자취방에서 배달음식을 먹으며 격리를 하기도 했었다. 나는 유행에 상당히 민감한 잔병치레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엄마는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나쁜 습관 중에 하나가 전에 지어놓은 약을 먹는다는 것이다.

아주 위험한 방법이라고 매번 다그치고 화를 내봐도 소용이 없다.

“증상이 똑같아. 내 병은 내가 잘 알아.” 고집도 이런 고집이 없다.

요즘은 하도 닦달을 해대는 통에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신다.

다행인건 큰 병은 없으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잔병치레의 왕 아빠가 덜컥 다리를 다치셨다. 일하시는 중에 발을 헛디뎌 발목이 퉁퉁 붓고 인대에 손상이 좀 갔다고 한다. 반깁스를 하고, 침도 맞으신다고 한다. 오늘 엄마에게 전화해서 아빠의 상태를 물으니 아빠의 엄살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어제 무리해서 일을 했더니 복숭아뼈가 붓고, 무릎뼈도 부은 것 같다고 어쩌면 좋냐고 계속 울상이야. 엄마가 의사니? 나도 몰라.” 엄마의 지친 한숨이 이어졌다. 아빠는 왕찡찡이다.

엄마가 성당 다녀와서 병원에 가 의사선생님께 여쭤보자고, 그전까지 좀 쉬고 계시라고 했다는데도 계속 근심이 한덩어리였다는 후문.

엄마의 세심한 관심과 과한 사랑표현이 듣고 싶어 그러시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럴수록 엄마는 더 얄밉다고 하셨다. 하하하. 40년의 부부의 애정표현은 그런건가.


잔병치레 대마왕, 아빠!

별일 아닐거야, 침 한 대 딱 맞고 얼른 나으셔!

으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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