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머리카락 수난시대

by E선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자는 버릇이 있다. 한 움큼 잡고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스르륵 잠이 든다.

신생아 때부터 잠투정이 심해 머리칼을 턱턱 내주던 게 문제였을까. 벌써 6살인데 졸리면 아직도 머리칼을 달라며 떼쓴다. 가발을 사볼까. 바비인형머리가 사람머리랑 비슷하니 잠자리 애착인형을 바꿔볼까. 무수한 시도는 모두 실패. 그저 졸리다고 떼쓸때면 나도 지치고 너도 지치니 그저 턱 하니 머리카락을 내어주고 만다.


문제는 바로 통증이다. 그냥 만지는 게 아니라 잠들려하다 조절을 못하면 잡아당기는데 그게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엄마. 너무 아파!” 라며 감정에 호소도 해보고,

“엄마, 머리 아빠처럼 잘라버린다. ”협박도 해보고 같이 당겨보면서 “이러면 넌 안아프냐?” 물어도 보지만 뭐 하나 통하지 않는다. “엄마, 나 오늘은 살살 그냥 만지기만 할게. 이건 안 아프지?”라며 슬쩍 잡는다.


완전히 잠이 들면 다행히 그 손이 놓아지고 쌔근쌔근 잠이 든다. 중간에 잠이 깨면 그녀의 손길은 다시 나의 머리카락을 찾아 헤맨다. 찾다가 없으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로 스멀스멀 다가온다.

벌써 5년 된 습관이라서 그런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여든 살까지 내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른 방안을 고안해 보다 최근 입이 닳도록 갖고 싶어 하는 2층침대를 생각해 낸다.

우리 집은 사실 이층침대가 필요가 없다. 아이도 하나이기에 “이층”침대가 필요가 없고 방이 분리가 안된 상태라면 안방은 이미 킹사이즈의 침대 때문에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층침대를 들이는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협상에 나선다. 과연 통할 것인가..

“엄마가 너 생일 되면 이층 침대 사줄 건데... 그럼 혼자 자야 되는데.. 그럼 오늘부터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

엇 아이가 반응했다. 오늘은 혼자 자보겠다고 선언을 한다. 스스로 10살까지 미루었던 수면독립이 오늘 밤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작은 희망이 품어진다. 하지만 새벽녘 다시 그녀는 내머리를 찾아헤매며 내품을 파고든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이 작은 손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내 머리카락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기도 한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엄마가 바로 옆에 있다는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도대체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어찌 보면 엄마를 원하는 당연한 마음, 안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버릇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몽글몽글하고, 따뜻하고, 살짝 아픈 내 머리카락 속에서 아이의 하루가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걸 보면 이 이상한 잠버릇을 그냥둘까하고도 망설이게 된다. 언젠가 머리카락이 없이도 잘 잠드는 날이 오면, 괜히 서운해지려나 고민해 보지만 일단은 내 머리카락은 해방되어야 하기에 오늘도 방안을 고민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