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이 되니 한글에 제법 관심이 많이 생긴다.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한글 익히기 교재를 사서 하루에 하나씩 연습을 해나간다. ‘가나다라’ 순서대로 알려주어도 ‘가나다라’보다 훨씬 관심이 많이 갖는 건 이름 쓰기이다. 자신의 이름, 엄마와 아빠의 이름, 선생님 이름, 친구들의 이름 쓰는 것에 관심을 부쩍 많이 갖는다. 중간에 막히는 글자가 생기면 어떻게 써야 하냐며 물어보는 눈망울도 너무 예쁘다. 가족의 이름, 친구들 이름으로 글자를 익힌 덕에 디귿이라는 말은 아직 생소하다. “디귿이 들어가야지,“라고 말하면 ”디귿이 뭐야? “”아, 어린이집 친구 중 다율이 할 때 들어가는 디귿!”이라고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써 내려간다.
이름들만 나열하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문장을 쓰려한다. 예쁜 종이만 생기면 어김없이 크레파스를 들고 와 하나의 문장밖에 없는 편지를 쓴다. 그녀의 편지의 수신인은 주로 나다. 색종이에 크레파스로 쓴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고 심플하다.
<엄마, 사랑해>
이 말로 여러 번 듣던 이야기가 편지로 나에게 전해지면 정말 마음이 울컥해진다. 어설픈 글씨, 비뚤어진 글씨마저도 정말 사랑스럽다. 그 작은 손이 무려 받침도 있는 이런 문장을 연습해서 썼다고 생각하니 기특한 마음이 마구 솟구친다.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온 남편과 내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각자 본인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쓴 날이어서 그랬을까. 몸도 마음도 고단하여 의미 없는 스크롤을 내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틈을 그냥 지나갈 리 없는 아이는 볼맨소리를 한다.
“왜 엄마아빠는 나랑 안 놀아주고 핸드폰만 해?”
“엄마, 아빠 좀만 쉴게. 잠깐만 혼자 놀고 있어.”라고 달래 보지만 그 말이 아이의 마음에 잘 닿지 않았나 보다.
잠시 후 혼자 거실로 나가서 스케치북을 찾아온다. “엄마, 나 글씨 쓸게 있는데 좀만 도와줄 수 있어? “라고 묻는다. 무슨 글자를 쓰고 싶은지 묻자, “불러만 줘. 내가 써볼게~ ” 라면서 아는 글씨는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만만이다.
그러면서 써 내려간 한 장의 편지.
<핸드폰금지 꼭 해주세요 사랑해 우리 가족>
고작 몇 줄 자리 문장의 편지가 웃기기도 하고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열심히 쓴 후에는 아빠에게도 나에게도 침실 한가운데 붙여 놓으라 성화다. “엄마, 아빠 이제부터 이건 우리 집 규칙이야. 침대에서는 핸드폰 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핸드폰 하던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이렇게 엄마아빠한테 글로 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한번 더 안아주었다. 글의 힘은 대단해서 아이의 짧은 편지를 침실에 붙여 놓으니 요새도 침대에서 핸드폰 안하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꼬마 선생님에게 나는 글자를 가르쳐주고, 나는 꼬마선생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배운다. 지금 이순간, 함께 하는것에 대한 소중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