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연대기

박보영의, 박보영에 의한

by 거대고양이

‘첫사랑’은 멜로드라마/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소재다. 주체할 수 없이 감정이 불타오르지만 미숙한 만큼 실수와 오해도 많았던 첫사랑 이야기는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학창 시절과 연결되어 아련한 복고 정서를 자극하기도 한다.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 <건축학개론>(2012) 등으로 이어진 첫사랑 영화는 특정 세대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흥행에 성공해왔다. <건축학개론>이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의 추억과 후일담을 그렸다면, <너의 결혼식>(2018)은 그다음 세대, 지금 30대에 들어선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추억...하면 역시 교복과 떡볶이죠?

(정작 자신은 '건축학개론 세대'인) 이석근 감독이 오랫동안 묵혀 둔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장편 데뷔작이며, 대세 ‘로코 퀸’ 박보영과 모델 출신 배우 김영광이 주연을 맡았다. (둘은 저주받은 걸작(?) 코미디 <피끓는 청춘>(2014)에서 일진짱 커플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워메 힘이 남아돈디여~

고3인 황우연(김영광)은 교무실에서 벌을 서다가 전학생인 환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승희는 우연과 함께 땡땡이를 치면서 친해지고, 남학생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우연과 사귄다고 거짓말한다. 우연은 고백을 준비하지만 승희는 홀연 전학을 가버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우연은 승희가 서울의 대학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안 하던 공부에 전념한 끝에 같은 학교에 입학한다.


우연은 꿈에도 그리던 승희와 조우하지만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승희가 혼자일 때 우연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등 두 사람은 좀처럼 맺어지지 못한다. 그러다가 우연이 승희를 위험에서 구하며 다친 사건을 계기로 둘은 마침내 사랑에 빠지지만, 안타깝게도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최고 달달한 장면. "빨리 안 하고 뭐 하냐?" (뭘?!)

<너의 결혼식>은 잘 짜인 플롯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미덕인 톡톡 튀는 대화를 갖춘 작품은 아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상당한 흥행은 배우 박보영의 덕분일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박보영은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스타 페르소나(허구 세계에서 한 배우가 갖는 집합적 개성)’를 구축해 왔다. 가족 코미디 <과속스캔들>(2008)의 출중한 연기 이후 꾸준히 성장한 박보영은 동화적인 판타지 <늑대소년>(2012)으로 티켓파워를 재입증했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에 음탕함(?)을 덧붙이며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훔친 박보영은 <힘쎈여자 도봉순>(2017)에서 원탑 주연을 꿰차며 독특한 ‘순수 괴력녀’의 모습을 선보였다.

<오 나의 귀신님>의 뽀블리.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시다..

박보영이 맡은 캐릭터들은 언뜻 착하고 귀여운 여성에 대한 대중의 선호에 영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대상화되지 않은 주체로서 이십 대 여성의 (한국 대중서사에서 낯선)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 왔다. <너의 결혼식>의 승희 또한 이러한 행보와 일치한다. 승희는 한국 멜로에서 흔히 보아온 청순가련의 스테레오 타입(<클래식>), 또는 남성의 시선에서 불가해한 ‘썅년(<건축학개론>)’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공부하고 돈을 벌고 미래를 준비하며 연애를 하는, 현실의 또래 여성들의 꿈과 불안을 지닌 인물이다. (러닝타임을 더 많이 차지하는 우연의 캐릭터가 외려 승희보다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직접 각본을 쓴 이석근 감독뿐만 아니라, 자연인 박보영에 맞게 캐릭터를 다듬고 디테일을 채워 넣은 배우의 공이기도 하다.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닌, 현실적인 이별.

<너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암시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의 장벽이나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가 두드러지지 않으며, 첫사랑이 실패하는 동기와 과정은 신파와 같은 극적 장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공감에 기반한다. 이는 아마도 우리 각자의 (첫)사랑 이야기는 실은 ‘실패’가 아니며, 우리가 애타는 시선으로 타인을 갈구한 끝에 자신을 마주하고, 마침내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과정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우연이 승희에게 그랬듯이.


- <비욘드>지에 실은 글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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