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싫은 당신에게 #운문 에세이
느리지만 꾸준히 멀어지는 모습들을
그저 가만히 보고 있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좁고
나는 너무나도 눈치가 빠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
이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테다
티 내지 않을 서운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지 이것이 최선임을 알기에
무력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테다
다만 조금 헐거운 눈으로
한 쌍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 한 채
그대들의 어깨 언저리를 응시하며
범람하는 파도 사이에서
나는 스노클링을 해왔던 거야
2022.02.19
인간관계로 한참 힘들 때가 있었다고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기도 끝무렵이 있었다.
이미 그 문제로 날마다 고민을 이어가던 나는 자존감이 거의 바닥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런 불만도 표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평소와 다름 없어 보였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것도 멀리서 보는 이들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금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를 빼놓고 만나는 경우들이 있었다. 우연인 줄 알았지만 계속 반복되었다. 다만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우연히 마주치거나 할 때는, 정말이지 친한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래서 헷갈렸던 것도 있다. 아예 나를 무시하거나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면 좀 더 일찍 알아차렸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한참 뒤에 알았다. 이것이 그들만의 멀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대놓고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던 그들은 티 내는 것을 최대한 삼가며, 매우 느리지만 꾸준히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신기했다. 딱히 그렇게 하자고 작정하고 짠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들 모두가 같은 방법을 쓰고 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새삼 그들을 더 짜치게 보이게 했다.
만날 때마다 나를 반겨주던 모습들은, 내게 남아있던 호의라기보다는 그저 총대와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이미 그렇게 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파도 틈에서 스노클링 마스크 하나만 낀 채 살아남기를 원하는 꼴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일찌감치 연을 끊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다. 그들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참 바보 같았다.
그 지점에서 하나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혼자만의 미련과 잔정 때문에 하던 고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갑자기 이들이 없어도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턱을 넘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하루 만에 연락을 모두 끊었다. 함께 뭉쳐 다닌 지 3년 만이었다. 스스로 그 문턱을 넘는 데는 또 1년 정도가 걸렸다. 한결 홀가분했다. 나를 조금 덜 생각해준다고 친구가 아닌 건 아니지만, 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친구로 두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결정권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 그 점만 명확히 알고 있다면, 범람하는 파도 사이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