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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Mar 06. 2022

내가 죽는다면

#시가 싫은 당신에게 #운문 에세이


눈을 감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어디로 갈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어느 한 곳에 누인 뒤

그대로 침묵

다가올 미래는 더 이상 없고

점점 흐릿해지는 지난날들을 붙잡고 늘어지다

결국에는 다시 또 침묵만이 남는데

가까스로 눈을 떠보지만

여전히 여전한 어둠에

갑자기 코끝을 타고 밀려오는 슬픔이

가슴을 찌르는 듯 아프다가도

조용히 허무하다


2022.03.06


가끔 잠들기 전에 내가 죽는 순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상상은 굉장히 고통스럽다. 찰나의 순간에 극심한 두려움에 몸서리를 칠 정도로 힘든 상상이다. 어느 정도냐면, 그 짧은 상상에서, 나는 결국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왜 하필 태어나서 죽어야 할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갑자기 원망의 대상도 없이 그냥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러나 그 침울한 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내가 아직 충분히 젊음을 자각하고, 만약 내가 기대수명 이상으로 '충분히' 살고 죽는다 해도 지금 같은 이 두려움과 아쉬움은 그대로 일지 궁금해지기에 이른다. 그렇게 짧고 고통스럽고 궁금한, 기묘한 상상을 애써 마무리하고 잠에 든다. 


사람의 인체 기관 중 마지막까지 기능하는 부위가 '귀'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죽음의 순간이나 하관(下棺) 후에 고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내가 죽을 때, 또는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 그리고 그것이 들린다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후련할까, 아니면 마냥 슬프고 아쉬울까. 그것은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삶을 내가 어떻게 살아갈 지에 달렸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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