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에세이 #베를린 천사의 시 (1987)
나는 천사다. 나는 불멸의 존재로, 오랜 시간 인간 세상을 관찰해왔다. 인간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이 천사의 임무이며, 인간사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영원히 살며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낀다. 인간들은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쓸쓸해하고, 삶에 고통받지만, 그런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인간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1987년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내용이다.
이 게시물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는 두 천사가 나온다. 다미엘과 그의 동료 카시엘이다. 두 천사는 베를린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맡은 구역의 인간들을 관찰한다. 거리를 순회하며 가난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의 손길을 뻗고, 가끔 순수한 존재인 어린아이에게 존재를 들키기도 하지만 직접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카시엘은 인간을 임무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반면, 다미엘은 인간에게 그 이상의 호기심을 가진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 얼굴에 살랑이는 바람, 커피와 담배의 맛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한다. 카시엘은 그런 다미엘을 늘 나무란다. 아마 ENTJ일 것이다.
다미엘은 서커스장에 들어갔다가 곡예사인 마리온을 만난다. 마리온은 다미엘을 볼 수 없으니 만난다가 아니라 발견한다, 정도일 것이다. 마리온은 그동안 다미엘이 봐왔던 인간 중 유독 쓸쓸해하고, 유독 자신의 일에 열심이다. 항상 곡예 연습을 한다. 그리고 쓸쓸하다가도 행복해한다. 다미엘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미엘의 호기심은 증폭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미엘은 호기심을 넘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존재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미엘은 천사이기에 마리온이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없다. 다미엘은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카시엘을 찾아간다. 카시엘은 며칠 동안 주로 한 명만 관찰한, 직무유기에 근무태만이었던 동료가 나타나 처음으로 뱉은 말이 '인간이 되고 싶다' 임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실로 대단한 천사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철없기 그지없는 동료를 만류한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 속에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설득을 포기한 카시엘은 임무를 마무리하고 하늘로 돌아간다. 다미엘은 결국 인간이 되어 마리온의 앞에 나타난다. 줄곧 흑백이던 영화는 그 순간 컬러로 뒤바뀐다. 다미엘은 호기심을 하나씩 충족하며 마리온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잘못했을 경우 바로잡을 수 있는 선택이 있는 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도 종종 있다. 그 순간 떠올려야 할 것은 '가치'이다. 무엇이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인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인가.
다미엘은 물질과 현재를, 카시엘은 규칙과 영원을 가치로 두었다. 다만 다미엘은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포장하기 위해 한 말일 수도 있다. 인간 다미엘이 죽기 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 <베를린 천사의 시>의 영어 버전 제목은 <Wings of Desire>, 즉 <욕망의 날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