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함

#지나가는말입니다

by 라이카

자고 일어나면 벌써 대선이다. 계엄으로 그 난리를 겪었던 것이 작년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갔다. 대선 후보들이 유세와 진흙탕 토론을 하는 동안, 나는 퇴사와 이직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나름 중요한 선택이었던, 나만의 작은 대선이었다.


인생 두 번째 퇴사를 하고 새 회사를 들어갔다. 두 번째 회사보다는 훨씬 건물이 크고, 훨씬 체계적이고, 훨씬 삭막해 보였다. 이게 진짜 회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처음 느끼는 사무실의 공기에 여기서의 미래가 잠깐 걱정되기도 했지만, 누울 자리의 크기를 키워 나가는 건 좋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발을 뻗어본 곳만큼 뒤척일 수 있는 법이니까.


지난 두 회사를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과정,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과정과 결정과 감정은 전부 사람의 것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도로 갈음할 수 있겠다.


유튜브에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박정민 편을 보았다.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의 유쾌하고 장난스러우며 소심하고 시샘 많은 초반부의 모습에서, 후반부에서 결연히 행동주의적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인물의 변화 폭이 너무도 커서, 그것의 전, 후반 연결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박정민 배우는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송몽규의 초반과 종반은 그 외모부터 성격까지 같은 사람인지 의심케 할 정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명연기였다. 이준익 감독은 그 당시 박정민의 고민에 한 마디로 대답했다.

"사람이 원래 그런 거야."


영화에서 인물의 초반과 후반이 180도 달라도 관객은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영화 속 인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란 원래 그렇기에, 그 정도 수준의 변화까지도 관객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 그 골자였다. 박정민은 그 한 마디에 고민이 해결되어, 송몽규의 극단적인 변신을 양가적인 모습이 있음을 인지하였음에도 자신 있게 연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때 인터뷰 영상 자막으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다]라는 문구가 나왔는데, 바로 그 자막이 내 지난 고민들과도 닿아 있어 어느 정도 울림이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은 찰나이기도,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 혼자만의, 또는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일종의 지혜로 작용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들으면 무슨 차이야? 싶은 두 문장이지만 말이다. 지난 순간들 중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괴로운 밤들을 보냈던 기억이 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내 일기장에 써놓겠다(일기장은 나만 볼 수 있다).


박정민과 송몽규와 이준익과 이동진이 내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사람은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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