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말입니다
나에겐 병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병도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심각한 건데,
바로 ‘내일 못 일어나면 어쩌지’ 병이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번 잠들면 쉽게 깨지 못한다. 유일한 방법은 인기척에 예민하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인데, 문제는 내가 자취 9년 차라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달리 방도가 없다.
더군다나 긴장도 좀 하는 편이라, 중요한 날 전날은 잠을 이루기 어렵다. 시험부터 면접, 중요한 행사, 심지어 10여 년 전 X와의 첫 드라이브 전날도 그랬다. 결코 설레서가 아니었다. 면허를 딴 후 첫 렌트였고, 데이트 당일 아침 그 친구를 픽업하러 가는 길이 인생 첫 나 홀로 운전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혼자 차로 무려 5km를 운전해야 했다. 500m도 아니고 5km나. 안 그래도 걱정에 잠이 안왔는데 일찍 일어나기까지 해야 했다.
이처럼 중요한 날은 주로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는 날이 많은데, 앞서 말한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 상당히 골치 아파진다. 긴장은 되고 잠은 안 오고. 긴장에 잠 못 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커진다. 그럴수록 잠은 오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는 최고의 시너지이자 무한동력이지만 나에게는 최악의 순환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도 너무 스트레스라 여기저기 방법도 알아봤고, 시도도 다양하게 해 봤다. 네 번째 방법에 실패했을 때쯤 친구에게 잠에 잘 드는 법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자기도 그렇다며, 맥주 500ml 캔을 원샷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일단 빠르게 잠드는 데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날 바로 실험해 봤고, 다음 날 11시에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나야 할 때는 쓰지 못할 방법 같았다.
잘 자고 잘 깨는 건 복이다. 특히 잘 깨는 건 내가 타고나지 못한 굉장한 복이다. 일어나야 할 시각 1시간 전부터 10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알람에서 겨우 눈을 뜨는(그때부터 알람이 들린다) 나 같은 사람은, 아마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보다 약속에 늦는 걸 싫어하지만, 누구보다 늦잠에 취약하다. 잠 앞에서만큼은 너무나도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