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아껴서 이자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난 지금은 대한민국 특수교사이다. 원하는 꿈 하나를 이루었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중이다. 여전히 스핑크스는 나를 따라다닌다. 예전에는 지켜봤다면 지금은 종종 문제를 던지곤 한다. 날카로운 이빨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다. 살기 위해 나는 사색을 시작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왜 교사가 됐어요?”라는 질문은 많이 받지 않았다. 그보다 “왜 특수교사가 됐어요?”라는 질문을 지겹도록 많이 받았다. 갓 대학교에 들어왔던 내게 선배들은 끊임없이 물었다. 한 번은 ‘오늘은 몇 번 들을까’ 예상하고 나갔더니 상상 이상의 질문이 쏟아졌던 경험도 있었다. 나중에는 ‘왜 이유 없이 그냥 하면 안 돼?’라는 반발심도 생겼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특수교육과에 들어온 분명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온 사람도 있었고 종교적인 이유로 온 사람도 있었다. 내가 물은 역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선배를 몇 못 봤다.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을 준비하는 긴 기간에도 그 질문은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선생님들이 묻곤 한다. 아마 질문의 속뜻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건 힘든 일인데 왜 꼭 집어서 이 일을 하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넌 왜 특수교사가 되었을까?
스핑크스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묻는다. 여기에 대답하려면 나에 관한 정체성과 특수교사에 관한 나만의 분명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가슴에는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설픈 대답은 질문에 의해 깎이고 깎여서 지금은 나다운 보석 같은 해답이 되었다. 나를 돌아보니 교사의 꿈을 처음 꾸던 그때의 답과 지금의 답은 현저히 다르다. 난 그 격차만큼 변하고 성장했으리라. 내가 은퇴할 때쯤이면 지금 가진 답보다 더 아름답게 깎인 현답을 찾을까? 미래의 나를 살짝 본 것처럼 두근거린다.
특수교육대상자는 개별적으로 맞춤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학생을 말한다.
특수교사는 유,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장애학생의 특성, 장애 정도 등을 고려하여 가르치는 선생님을 말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꿈과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보석이 될 수 있겠구나. 아이들에게 해주는 좋은 질문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그럼 나는? 누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해줄 수는 없나? 불행히도 없다. 내가 나에게 평생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질문하기’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에 보면 일일일지(一日一止)라는 말이 있다. 一止가 합치면 正이 되므로 하루에 한 번 멈춰 서면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불필요한 것과 헤어지기 –마스노 슌묘>
‘스스로 질문하기’는 멈춰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나에게 하루에 한 번은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어떨까? 스핑크스가 내게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사라졌다. 오늘은 물냉? 비냉?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정의되는 순간
오히려 동기는 떨어지고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게 본능이고 당연하다.
그러니까 미루자.
24개월 무이자
아니! 평생 무이자로 할부하고 싶다.
영원히 조금씩 내고 싶다.
사랑도
행운도
행복도
질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