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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Jan 23. 2020

아내 사랑 실천기|명절 갈등을 줄이는 변화

설날에 남편이 살아남는 방법





1월 1일은 일가친척을 포함한 대가족이 밖에서 만난다. 이번에는 광명동굴에서 보기로 했다. 시댁식구들을 넘어 일가친척을 만나는 일이 아내에게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아내님에게 무한 감사를 드릴 시점이다. 절대 절대 사자의 코털을 건들면 안 될 날이다. 찍!





아내에게 고마운 날인데 참 표현이 서툴다. '칭찬은 삼키면 독이 되고 뱉으면 약이 될지어다' 제우스가 한심하다는 듯 내 어깨 위에서 중얼거리더니 혀를 찬다. 헤라한테는 약을 줬고? 제우스는 바쁘다는 듯 동굴로 사라졌다. 남을 향한 칭찬을 내가 표현하지 않고 삼키기만 하면 독이 된다고 하니 자주 뱉어줘야겠다.





집집마다 명절문화가 다르겠지만 우리 집도 나름 특이한 명절문화가 있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새해 첫날부터 시댁 쪽 일가친척을 모두 만나지만, 친정에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부조화를 메웠다. 나의 부모님은 며느리를 배려하기 위해 좋은 변화를 만드셨다. 바로 기존의 관행을 바꾸는 것이었다. 




첫째, 구정 설날은 각자 보내기
-이때 우리는 장인어른, 장모님과 1박 여행을 가거나 함께 보낸다.

둘째, 명절 제사 간소화 하기
-더는 큰아버지네 댁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이지 않는다. 가볍게 즐길 여행장소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기도드리는 것으로 끝낸다.

셋째, 안부나 계획 나누기
-많은 식구가 돌아가며 자신의 안부나 한 해 계획을 한 마디 말하며 친목을 도모한다. 물론 부담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서로 연락이 거의 없는 터라 그렇게라도 안부를 알 수 있다.

넷째,  대소사 카톡으로 공유하기
-작년 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일가친척의 대소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친척을 만나도 "취업 준비해?" "아이는 언제 낳아?"와 같은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소사에 적힌 이야기 속에 대화의 소재가 많다.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노력이 아닌 노오오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비난에 빠진다. 하지만 과연 그래야 할까? 최근에 아내와 논란 아닌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82년에 김지영>을 보았다. 사실 그 세대인 나는 현실적인 부부의 삶을 나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남편 공유는 아내를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지켜주려고 애쓰지만, 아내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공유가 생각하는 노오오력은 물거품이 된다. 





영화에서 단편적인 부분만 떼어보자. 집안일을 도와주는 공유는 없었다. 아마 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노오오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직장을 가졌다면 슈퍼맨이 아니고서야 밀린 집안일과 육아는 갈등의 불씨가 된다. 꺼진 불을 다시 보아도 불씨는 생길 수밖에 없다. 맞벌이 부부라면 만능 소방대원이어도 화상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으로도 화상을 입었다는 것은 환경의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부정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혹독한 육아, 집안의 잘못된 문화, 고정관념, 사회적 관심과 지원 부족 등이 끔찍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82년생 김지영 역시 마찬가지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건 공유가 슈퍼맨이어도 똑같은 환경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환경의 노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설날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만약 내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는 기존의 설날이 이어졌다면 나의 노오오력으로 아내를 위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은 제수씨를 위해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갔다가 큰어머니에게 크게 혼났던 집안이었다- 모든 것은 부모님의 지혜와 결단 덕분이다. 갈등의 불씨를 미리 꺼주신 아버지와 어머니, 감사합니다.





불합리한 환경의 리프레임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결단과 내가 아닌 우리의 간절함과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혹시 내가 바꿀 수 있는 환경-이른바 '환경권'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더 나은 환경을 바꿀 권리를 가진 자는 변화를 이끌 책임도 가진다.-임에도 편히 엉덩이를 깔고 앉아만 있는지 돌아봐야겠다. 이봐 자네, 엉덩이에 쥐나것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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