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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Oct 19. 2020

하루가 별거지|가슴이 막혔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2020년 9월 24일 목요일을 난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은 지루한 날이길 간절히 바랐던 하루였다. 

아침답게 난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이의 유치원을 들렀다가 출근하기에는 조금 빡빡한 아침이었다. 

차 문을 여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도 전화하지 않는 녀석이 아침 전화라니! 

난 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가… 쓰러지셨어. 심장이 뛰질 않아.”





난 급히 전화를 끊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먼저 직장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교감 선생님 연락처를 찾는데 갑자기 성함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떨리는 손을 보며 내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늦을까 싶어서 일단 출발했다. 

잠시 멈춘 신호를 틈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이야기하니 아내가 울먹인다. 

아직 울 때는 아니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내가 상황을 보고 오후에 오라고 했다. 





출근길이라 가는 길은 얄궂게 느리기만 했다. 

미리 충전하지 못한 휴대폰 배터리는 10퍼센트도 남지 않았다. 

먼 길을 가서 동생에게 전화하려면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은 꺼야 했다. 

여러 번 세상은 일그러졌다가 투박한 손으로 비비면 다시 선명하게 보였다. 

절반쯤 오자 현실적인 생각도 오갔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건 뇌출혈일까? 

마비가 오면 어떡하지? 아니면 산소부족으로 뇌라도 손상 입으면 어쩌지? 

후유증이 없어야 할 텐데. 

입술은 자꾸 마르고 눈은 촉촉해졌다. 

‘제발’이라는 말을 평생 했던 것보다 오늘 더 많이 중얼거리고서야 용인에 도착했다. 





얼른 휴대폰을 켜서 동생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괜찮으셔? 세브란스 병원 어디야?”

“돌아가셨어…. 장례식장이야. 빨리 와.”


동생의 말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설마 했는데.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병원 침대에서 괜찮다고 할 엄마일 텐데. 

엄마는 젊은 연세에 급히 세상을 떠나셨다. 

아내에게 뒤늦게 전화하니 이미 다 알고 용인으로 오는 중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가족 중에서 임종 소식을 가장 늦게 듣게 되었다. 

어쩌면 엄마의 죽음 소식을 본능적으로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들은 장례식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넋이 빠진 몸으로 곁에 계셨다. 

슬픔을 함께 나눌 틈 없이 장남인 나도 얽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갔다. 

직접 엄마의 모습을 본 동생들과 다르게 난 현실감이 없었고 공감 능력도 떨어졌다. 

조금은 차분하고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장례를 준비했다. 

조문객으로서 지내던 때와 다르게 상주는 마음이 힘든 와중에도 할 일이 많았다. 

특히, 형사들에게 상황을 다시 설명하는 일은 너무나 괴로웠다. 

경력이 많아 보이는 형사와 달리 젊은 형사는 아버지의 얼굴에 눈을 떼지 않으며 살인 용의자를 바라보는 듯했다. 





아버지는 천천히 엄마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입을 뗐다. 

아버지의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슬픈 억양이었고 수없이 끊겼다가 겨우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특별한 지병 없이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늘 그랬든 엄마는 새벽에 일어났고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났다. 

그 짧고도 긴 틈에 엄마는 쓰러지고 말았다.

119가 와서 급히 병원을 갔지만, 의사는 이미 집에서 사망했다고 보았다.

형사들은 원인을 알고 싶다면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당연히 반대했다. 

그냥 편히 엄마가 쉬셨으면 했다. 

다행히 특별한 문제없이 장례식은 진행되었다. 





죽음 앞에서도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수의를 고르고 관을 고르고 상주복을 고르고 유골함을 고르고 조문 올 사람을 고르다 보니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영정사진. 

철없는 나는 멍하니 쳐다보기 바빴다. 

매정한 눈은 눈물을 주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현실 때문에 눈이 말라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여권을 새로 만드느라 여권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영정사진이 되었다며 또 눈물을 훔친다. 

그렇다.

엄마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홀로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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