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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Oct 16. 2020

하루가 별거지|어디까지일까요?

만남의 1회차






#만남의 1회차 어디까지일까요?





직업 특성상 작은 볼일은 참는 편이다. 

쉬는 시간에는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방광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 되면 화장실로 향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참새 걸음으로 날듯이 걸어서 복도를 지나는데 아이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나도 질세라 큰 소리로 인사했다. 

요즘은 인사를 하는 아이가 귀하다. 

솔직히 내 인사를 받아주기만 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방광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오는데 아까 그 아이와 다시 마주쳤다. 

아이는 나를 보며 다시 큰소리로 인사했다. 

나도 물론 예를 표했다. 그날 내내 두 번 인사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만나고 헤어지는 시점을 각각 따로 여겼기 때문에 두 번의 예의를 차린 것이다. 

당연한 행동이다. 

물론 아이가 더 크면 두 번째 볼 때는 목례만 하거나 다른 아이에 물들어 인사를 포기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기존 인사의 시간부터 어색한 다음 인사까지의 시간을 ‘만남기’라는 단위로 불러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그 아이랑 비슷한 상황이 종종 있었다. 

오늘만 해도 교장 선생님과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불과 10분 뒤에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사실 특별히 할 말도 없는 입장에서 만나면 불편하다. 

그저 목례만 하고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만남기 3회차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공포지만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면 역시나 일관성 있게 나는 목례를 할 것이다. 

아쉽지만 나의 만남기는 참 짧다.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인사를 단번에 끝내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 대신 정치, 경계, 사회, 교육, 날씨 등을 신문처럼 읊는다. 

눈 한번 끔벅이며 공감대의 멍석을 깐다. 

만남기가 실타래처럼 긴 그들이 정말 부럽다. 

어색한 인사가 그들에게는 어색한 이야기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불편함 없이 만남기가 긴 사람은 내 곁에 존재할까?” 

다행히 있다. 

친구 그리고 가족이 그렇다. 

언제 어디서 빈번하게 만나도 예의를 차린 인사는 생략된다. 

결국, 나는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만남기를 길게 갖는 특성이 있는 셈이다. 





만남기라는 뜻을 매기니 문득 초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국민학생이지만 자연스러웠다. 

노을이 물들어가는 동네 놀이터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쳤다. 

나는 어떻게 인사를 할지 몰라서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는 아저씨라고 여겼을 것이다. 

정말 어색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렸던 아버지가 굉장히 어려워서 짧은 만남기로 대했을 것이다.





반면에 그 나이 때에 엄마에게는 다르게 행동했다. 

사고뭉치 삼 형제를 홑벌이로 키우기 힘들었던 엄마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하였다. 

나도 몇 번 도와드리곤 했는데 한번은 아버지처럼 하늘이 붉어질 때 어쩌다가 엄마와 마주쳤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있던 나는 엄마를 외면했다. 

차라리 “안녕하세요”라고 했으면 엄마가 상처 받지 않으셨을 텐데 마냥 부끄럽게 여겼던 내가 용서가 안 된다. 

그날 밤 엄마는 집에서 흐느끼며 우셨다. 

어린 나는 엄마를 위로하지 못할망정 무서운 아버지에게 혼날까 겁만 먹은 밤이었다.





머리가 굵어서는 짧은 만남기에 있던 사이를 어떻게든 늘려보려고 애썼고 마음이 굵어서는 사계절을 겪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다가올 사람은 가까이 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관계의 개똥철학이 자랐다. 

그때부터 일부러 외향적인 척하는 노력도 사라졌다.





내성적이어도 짧은 만남기에 맞게 인사하면 된다. 

그럼 최소한 예의 있는 사람이 된다. 

긴 만남기라면 거기에 맞게 인사 대신 살갑게 대하면 된다. 

그럼 최소한 우선순위는 틀리지 않는다. 

만약 긴 만남기이면서 짧은 만남기처럼 굴거나 세상 물정에 물들어 외면하게 된다면 관계는 곧 분리수거되고 정리 정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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