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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Oct 13. 2020

하루가 별거지|진짜 노력하고 싶다

노력의 한 방울




개인사 때문에 요즘은 슬픈 영화를 즐겨본다. 

울기 위해서 보는 건지 영화를 핑계로 울음을 감추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오늘 새벽에 본 영화 <싱글라이더>. 




증권회사의 지점장이었던 기러기 남편 재훈은 부실채권으로 한순간에 삶이 무너진다. 

그는 무작정 호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찾아간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는 몰랐으면 좋았을 일이 생기고 만다. 

평소와 다르게 주인공의 마음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금방 영화가 끝났다.




문제는 시드니에서 만난 지나라는 여성이 재훈에게 한 말이 자꾸 내 머리를 흔들어 놓는다.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은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진짜 다 개소리거든요.




맞는 말이다. 

세상에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옛‘나’는-생산적인 결과도 없던 ‘취업 준비+장수생’이었다- 헛된 밤을 새우고 새벽 버스를 타면 그들의 눈이라도 마주칠까 바삐 뒷자리로 갔었다. 

부지런히 자기의 몫을 해내는 그들이 부러웠다. 

지금 새벽 버스를 타면 나의 고개를 세울 수 있을까? 

똑같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현재의 나는 고개 숙인 나에서 새벽에 무거운 몸을 끄는 나로 바뀌었다. 

나의 몫을 하는 걸 보면 큰 성장은 맞지만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가장 큰 아이러니는 최선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면 따질 허점은 얼마든지 나온다. 

그리고 난 자책하며 다시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래 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성실과 노력 그리고 최선은 성공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에 아내와 열띤 이야기를 가진 적이 있다. 

나는 지인이 외적인 ‘돈’만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게 비참하다고 했다. 

아내는 당신이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그런 삶을 비난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의견이 계속 반박당하자 뿔이 났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반박하는 그녀를 보면서 혹시 아내가 외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건 아닌지 오해했다.




결국 나의 자기기만에 불과했다. 

사는 대로 살면서 지금의 노력을 희망으로 본 게 어리석었다. 

나를 포장하고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가루가 몇 숟가락은 들어갔을 것이다. 

더 자세히 내 마음을 파헤치니 무엇을 시기하는지 깨달았다. 

여유를 가지면서 이루는 행복이 부러웠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그 점이 존경스러웠다. 




나의 성실과 노력 그리고 최선은 추진력을 주지만 더불어 사색을 뺏는다. 

생각을 뺏긴 사람은 더는 성장할 수 없다. 

이제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그 일에 내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 

노력의 한 방울도 아낌없이 바라는 곳에 쓰고 싶다. 

아니 쓴다. 

지금.




아내에게 <싱글라이더>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뭐라고 할까? 

‘심각한 영화를 보고 무슨 그렇게 진지한 자기반성이야’라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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