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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Oct 03. 2020

하루가 별거지|살아남아야 한다

오늘도 바꿨다






영화 <#살아있다>를 보았다. 늘 한결같던 세상이 좀비라는 전염병 때문에 망가져 버리고 주인공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수없이 나를 버렸다가 주워 담는 내용이다. 영화를 다 본 뒤에도 나는 한참을 스크린 속 세상에 빠져버렸다. 이건 트랜스포머 1탄을 보고 주변의 차가 변신할 것만 같은 느낌과 비슷했다. 





다행히 집에는 식량이 충분했고 아직 코로나 19가 나를 물진 않았다. 스트레스나 강제퇴직과 같은 무서운 좀비는 우리 집 아파트만 얼쩡거리고 있다. 대신 선인장처럼 막 키우던 건강에게 물리고 말았다. 2주일째 허리가 아파서 앉으나 서나 내 일을 남 일처럼 대해야 했다. 자다가도 두세 시간 단위로 깨는 심각한 나날이 이어져서야 병원을 방문하였다. 다행히 물리치료와 약을 먹으며 예전처럼 내 일을 내 일답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처음 하는 내시경과 조직검사로 만성위염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위암이 아니라서 안도를 했지만, 부모님께서 우리 집안에서 위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다고 알려주셨다. 이렇게 중요한 가족력을 난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아들만 셋인 과묵한 가정답다. 심지어 당뇨도 가족력이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전적으로 병이 없다며 건강에 콧대를 세웠다니. 부끄럽다.





건강 때문에 침울할 만도 한데 영화를 본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난 살아남았고 살아갈 테니까.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흐트러졌던 나를 검은 봉다리에 -비속어가 더 잘 어울린다.- 주섬주섬 담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기록이 답이다. 해시태그도 정했다. #오늘도 바뀌었다. 하루에 단 하나 바뀐 점을 올림으로써 나의 생존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감이 그렇다. ‘바뀌었다’는 너무 수동적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했다. #오늘도 바꿨다. 첫날은 평생 함께할 친구를 기록했다. 바로 위염과 허리디스크였다. 그들 덕분에 위와 허리를 더 챙기고 운동을 하게 되었다. 역시 친구란 그런 거다. 필요할 때 쓴소리를 해주고 나를 바꾸게 해준다. 아내에게 오늘 느낀 점이라고 소개하니 무슨 좀비 영화를 보고서 깨달음을 얻느냐며 웃는다. 어른이 되면 좀비도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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