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창고 Sep 23. 2020

하루가 별거지|창 너머 하루가 온다

출근길 일상






출근길은 언제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한 숟갈이라도 먹이겠다고 아이와 입씨름을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현관문을 닫았다. 닫히는 자동문을 슬라이딩하며 지나가는 액션 영화의 짜릿함이 느껴지니 나의 출근은 블록버스터급이라 하겠다. 





차를 타니 몇 주째 찌든 쓰레기 냄새가 나의 양심을 찌른다. 나 그리고 아이의 코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기약할 수 없는 반성문을 또 남긴다. 차에 시동이 걸리면 아이는 늘 헬로 카봇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깜냥이는 헬로 카봇 만화를 단 1회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다.- 7년째 운전 초보인 나는 이야기를 만드느라 머리가 복잡해진다. 차를 운전할 때는 첫 5분을 조심하라고 했기에 나의 사정을 조아려도 깜냥이는 나를 강하게 키울 뿐이다. 





운전이 궤도에 도달하자 나의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다. 더듬더듬 말하던 나는 아이에게 오늘의 물건을 물었다. 이야기를 지어내다가 막히면 물건에서 힌트를 얻곤 한다. 오늘은 뚜껑이다. 뚜껑을 생각하니 바로 민달팽이가 떠올랐다. 내 집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민달팽이가 여기서는 괴물이다. 집채만 한 민달팽이 두 마리가 남의 집을 뺏으며 경쟁하고 있었다. 어느새 차도 이야기를 듣느라 기약 없이 서 있는다. 





그때 깜냥이가 자기 쪽 창을 열었다. 옆을 보니 시내버스도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멈추어있다. 사람들은 깜냥이와 얼굴이 마주쳤다. 깜냥이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눈치챈 나는 창을 조금만 닫았다. 그러자 깜냥이가 다시 쭉 열었다. 나는 재차 띡띡띡 소리를 내며 조금 닫았다. 질세라 깜냥이는 쭉 열었다. 지루한 빨간불 아래에서 몇 번이고 손씨름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가 쭉 창문을 닫는 게 아닌가! 내가 여니까 아빠가 닫았지? 그럼 이번에 내가 닫으면 아빠가 열겠지? 5살 아이의 꼼수가 확 느껴졌다. 내가 눈치를 챘으니 그렇게 해주는 게 아빠로서 해야 할 도리였는데 그러지 못했다. 만약 내가 열어줬다면 아이의 추론이 빛을 볼 텐데 내 생각이 짧았다. 내공을 쌓기 위해 다른 스승을 찾아야 하나. 기다리던 아이는 또다시 쭉 창을 열었다. 그리고 난 조금 닫았다. 





기다리던 초록 불에 열심히 달리며 다시 카봇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유치원 근처에 가서야 끝낼 수 있었다. 그러자 깜냥이가 말한다. 오늘은 좀 짧네. 이 정도가 짧다고! 흥! 다음에는 정말 긴 이야기를 해주마. 서운함에 발끈하고 보니 또 아이의 꼬임에 넘어간 것 같다. 나도 출근하고 차를 한 잔 마시는데 갑자기 킥킥 웃음이 났다. 아까 창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차를 바라보며 버스 속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