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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Nov 03. 2020

하루가 별거지|기적 같은 만남은 매 순간 이어진다

아버지와의 첫 데이트






공돈과 같은 공시간이 생겼다고 아버지와 약속을 잡았다. 

아버지는 정년퇴직한 뒤에도 왕성하게 예술의 길을 걸었다. 

백수가 과로사하는 법이라며 허허 웃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를 잃고 사랑하는 모든 일을 놓아두었다.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를 응원하고 싶었다. 





하필 가벼운 전시회만 있어서 아쉬웠는데 뮤지컬이 떠올랐다. 

매진 행렬에서 다행히 고스트라는 뮤지컬을 찾았다. 

예전에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스토리가 아버지와 내 현실과도 같았다. 





서서 가는 버스 속에서 진동에 맞추어 춤추는 사색을 가졌다. 

여유를 한잔 들이켜자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아버지랑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무뚝뚝한 아버지가 세월의 풍파에 말문이 조금은 열리긴 했지만, 부자지간에 대화가 길게 오간 적은 없다.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진 투정도 좀 하고 싶다.





약속 시각 전에 도착할 걸 알기 때문에 일찍 도착했지만, 아버지는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다. 

약간은 어색하고 신선한 상황이 즐거웠다. 

엄마도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왜 예전에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당연한 걸 당연히 여기는 건방이 나의 엉덩이를 세게 찬 기분이다.





대화하기 힘든 사람을 만난다면 그냥 그 사람이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입을 뗐는데 아버지와의 대화는 예상 밖으로 술술 풀렸다. 

내가 일부러 MC가 되어 혼자 지내는 아버지의 막힌 말을 풀어주었다. 

종종 나오는 엄마라는 주제에 서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매일 잘 죽기 위한 연습 중이다. 

잘 죽기 위해 관련 책도 보고 집도 정리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장례식장에 올 분들의 연락처를 미리 인쇄해두고 불필요한 물건도 정리 중이다. 

어느 소방관이 출근 전에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서 부모가 집에 찾아왔을 때 더러우면 삶을 너무 치열하게 살았다고 오해할 수 있어서 청소한다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정리할 때 삶이 최대한 깔끔했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이 내 교실을 둘러보면서 ‘참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쳤네’라고 했으면 한다. 

미뤄둔 원고를 차근차근 끝내서 ‘그래도 사는 동안 원하는 길을 잘 걸었네’라는 마무리 인사를 듣고 싶다. 

사람들에게 무뚝뚝해 보여도 ‘아내와 자식에게 참 잘했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렇게 죽음은 삶에서 제일 중요한 구역을 나누고 정리하게끔 한다. 

언제라도 부끄럽지 않은 끝을 준비하리라.





죽음과 다르게 뮤지컬은 예정된 시각에 시작되었다. 

짜인 연출과 화려한 조명 아래서 배우는 열정을 토해냈다. 

어린 시절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작은 생각을 했었다. 

“이거 새드엔딩이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거잖아.”

지나치게 해피엔딩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해피엔딩이 맞았다.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죽음 후에도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어루만지고 맺힌 말도 흐르게 한다. 

이런 기적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마무리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발효된 묵은 말을 퍼내야 한다. 

그래야 구수한 새드엔딩을 찍을 수 있다.      

잠시 산책하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단둘이 떠난 건 처음이에요.”

“그랬던가?”

왜 진작에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까.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몇 차례 아버지하고 둘만 있었다. 

수능 당일, 대학 원서 접수 날, 임용시험 당일. 따뜻한 차 안에서 뉴스 소리만 들렸다. 

그것밖에 없었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기억을 녹녹하게 더듬었다. 

유일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생 때였다. 

아버지는 엑셀이라는 첫차를 장만하고 정말 기뻐하였다. 

얼마나 설렜는지 차가 온 다음 날 새벽에 나를 깨웠다.

비몽사몽 아버지 차를 타고 먼 약수터로 갔다.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가 해맑은 어린아이 표정으로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모습에는 첫 유턴으로 차 범퍼를 긁은 아픔도 녹았겠지만, 나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왜 동생들은 빼고 나만 데려갔는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어느새 하늘은 혼탁한 조명을 맞으며 어두워졌다. 

처음보다 밝아진 아버지 얼굴을 보니 나도 낯이 산다. 

아버지가 지금처럼 천천히 함께 하는 삶을 택했으면 좋겠다. 

풍선껌이 붙은 것 같은 발을 하나씩 떼며 나도 유턴을 했다. 

이제 아내의 낯을 살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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