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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Nov 02. 2020

하루가 별거지|6시간의 시한부 삶

아내의 외출






이번 주 아내가 외출한다. 

계속 미뤘던 엄마들의 모임이다. 

아이들끼리 만날 수 있으니 깜냥이도 신 나는 일이다. 

우리 때와 달리 지금은 또래를 만나는 것조차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현실에 쓴맛을 우러난다. 

모두 15명의 아이를 맡게 될 아내의 희생에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나라는 인간을 이기적인 시선에서 보면 갑자기 한나절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공돈을 얻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 

1년에 한두 번 겪는 이 시간이 매번 내게 묻는다. 


“세상에서 6시간만 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마치 시한부 인생이 된 기분이다.

그동안 행적을 돌아보면 장소는 일정하다.

 도서관, 서점, 카페, 헌혈의 집, 지하철이나 버스가 대부분이며 가끔 전시관이나 미술관이 있다. 

아내의 예상 범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따금 일탈을 부르지만 결국 6시간이 지나고 보면 장소는 변함없다.      





제이슨 프라이드의 <똑바로 일하라>를 보면 ‘열정을 가치와 혼동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가치는 쓸모를 의미한다. 

열정에 치우쳐 쓸모라는 기준을 놓치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인생이 6시간만 남은 사람에게 쓸모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쓸모 있는 삶이란 내가 나사나 톱니바퀴처럼 유용한 역할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대입하자면 교사의 삶 그리고 작가의 삶에 충실한 것이다. 

과연 그렇게 살면 후회가 없을까?      






거기에는 역할의 나는 있지만, 본질의 나는 없다. 

그래서 6시간 동안 나는 자신과의 대화를 위해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 

끝없이 사색하고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나의 감정을 기록한다. 

그곳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만난다.      

사실 이런 행동은 임용을 준비하는 장수생 때 생긴 버릇이다. 

너무나 답답한 일상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전주로 내려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산뜻한 종이 냄새가 나는 책을 읽었다. 

얼마나 갈증을 냈던지 다시 노량진에 올 때면 세 권의 책 모두 내 손길이 닿았다.






목적지에는 군 시절 상관이었던 중사 형이 있다. 

형은 군 생활을 그만두고 우유 납품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서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 난 그저 형의 삶에 녹기로 했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함께 우유랑 씨름했다. 

형은 사색하기 좋은 말을 가없이 내게 건넸다.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자기 꿈을 위해 피아노 버스킹과 예술 활동을 하는 형이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힘을 받고 돌아온 좋은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와의 수다를 많이 나눈 뒤에는 항상 나는 바로 섰다. 

오랜만에 바로 그 시간이 내게 오려고 한다.     






깜냥이와 유치원에 가면서 넌지시 물었다. 

“깜냥아, 너 혹시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기면 뭘 할 거야?”

아이는 짧은 머뭇거림도 없이 입을 열었다.

“아빠랑 공룡 게임할 거야. 그리고 초콜릿 사서 아빠 주고 나도 먹을 거야. 그리고 아빠랑…”

초콜릿은 내가 먹지 않는 간식이니 깜냥이가 먹겠다는 말을 돌려서 잘한다. 

그보다 계속 붙던 ‘아빠랑’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도 옮겨 붙었다.

나와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은데 삶이 바쁘다고 해주지 못했다. 

깜냥이는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하늘로 엄마가 떠나고 한 달 넘게 슬픔을 견디고 있는 아버지. 

이번에는 아버지랑 있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들었다. 

중저음의 아버지 목소리는 여전히 촉촉하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다른 의미로 내가 바로 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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